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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의 인생 십계명

이한기2024.06.25 08:20조회 수 11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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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의

  인생 십계명   

 

임진왜란 극복에 가장

공이 큰 류성룡은

세 차례나 영의정을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했다. 

 

임진왜란 전 해에

형조정랑

권율을 4계급 승진시켜

의주목사에 천거하고, 

정읍현감 이순신을

7 계급을 승진시켜

전라좌수사에 천거한

사례는 유명하다. 

 

왜적이 오는 길목

동래에 송상헌을

부사로 보내는 등 

임란 9영웅이 모두

류성룡에 의해

발탁되었다.

 

류성룡이 3번째

파직당하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우연이라

볼 수 있을까?

 

서애 류성룡에게서

배우는 10가지

교훈입니다.

 

1.인생 1계명 

 

외부의 적과는 싸워도

내부의 적과는 싸우지

마라. 

 

정적이었던 이산해와

정철과 조정 안에서

끊임없이 만나고

국사를 논의해야 했다. 

기축옥사로 동인

1,000여명을 죽이고

귀양보낸 정철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산해에

반대해서 피의 보복을

멈추자고 주장해

관철시킨게 류성룡이다.

(이때부터 동인은

이산해의 북인,

류성룡의 남인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2.인생 2계명 

 

전쟁을 대비하지 않고

평화를ㅍ누리지 마라. 

 

평화는 강자의 여유다.

약자는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평화를 누리려면 먼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3.인생 3계명 

 

결단의 순간에 망설이지

마라. 

 

선조가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로 도주하려

하자 막아선 사람이

류성룡이다. 

한발자욱만 넘어가도

조선은 우리땅이

아닌게 된다는 것이었다

 

왜적과의 뒷거래를

막으려고 명나라 황제의

깃발을 막아 섰다가

사형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류성룡에게는 명나라

황제의 권위보다,

절대군주인 왕의

안위보다, 

국가와 백성의 안위가

중요했기에 필요한

때에는ㅠ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4.인생 4계명 

 

옳은 일을 했다고 당장

인정받기를 바라지 마라.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동분서주하며 나라를

위해 뛴 결과가

파직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조용히

고향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하늘이 알았고,

백성이 알았고, 역사가

알아주었다.

 

5.인생 5계명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만들지 마라. 

 

류성룡은 탁상에서

정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7년 중 5년을

4도 체찰사(경상도,전라도,

평안도,함길도의 전시

총사령관)로 현장을

다니면서 진두지휘했다.

 

명나라 군대와  평양성을

탈환할 때 조선군의

총사령관 류성룡은

칡넝쿨을 모아오라

해서 그것으로

새끼를 꼬아 엮어서 

임진강 양쪽에 매고

부교를 만들어 말과

대포를 건너게 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헐버트는 거북선, 한글,

금속활자와 함께

칡넝쿨 부교를 한국의

4대 발명품으로 꼽았고, 

 

지금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에서는

칡넝쿨 부교를 교재에

넣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6.인생 6계명 

 

고정관념을 깨지 않고

세상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기축옥사로 조정대신

1,000여명이 사라져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할

때 우의정 겸 이조판서를

맡은 류성룡은 

권율, 이순신, 송상헌

등을 파격승진 발탁해서

임진왜란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7.인생 7계명 

 

능력을 보지 않고

신분과 학력을 따지지

마라. 

 

평민도 공을 세우면

군관이 되도록 했고, 

노비도 전공을 세우면

면천했다. 

훈련도감을 만들어

최초로상비군(봉급받는

군인)을 창설하고, 

양반이건 평민이건

노비건 가리지 않고

능력이 있는 자를

합격시켰다. 

이로 인해 왕족들과

양반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고, 조선의 기본질서

(반상차별)를

무너트린다고

탄핵상소가 빗발쳤다.

 

8.인생 8계명 

 

경계를 넘어 공부하지

않고 할 수 없다고

하지 마라. 

 

과거시험에만 몰두하지

않고 폭넓은 학문을

탐구했다. 류성룡이

집필한"증손전수방략"

이란 병법서를 받은

이순신은

"육전, 수전, 화공 등

전략들이 모두

구체적이며, 비교할

데가 없는 탁월한

이론"이라고 했다

(난중일기 1592년

3월 5일)

 

9.인생 9계명 

 

마음을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때론 포악하고 때론

변덕스러운 선조의

마음을 잡아 국정을

바르게 이끌어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선조가 전쟁책임을

덮어 씌워 파직시킨

김성일을 선조를 끝까지

설득하여 경상도

초유사로 발탁하고

이어 경상도 관찰사로

공을 세우게 했다. 

전쟁 중에 도망친

사람들도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고, 

지방 아전들을

공명책으로 자발적인

봉사하도록 만들었다. 

전쟁때는 군량미를

징발(약탈)할 수 있으나, 

류성룡은 창고에 양식을

쌓아둔 중인과

아전들에게 실권이 없는

관직(공명첩)을 주고

군량미를 자발적으로

내도록 했다.

 

10.인생 10계명 

 

반성하는 삶을 살지

않고 내 인생만

힘들다고 하지 마라. 

 

류성룡은 평생을

국가에 헌신했고 왜란

극복에 앞장섰지만, 

그 대가는 파직이었다. 

그러나 말없이

고향으로 내려가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허균은 류성룡을

"조선의 장자방"이라

칭송하면서 

"류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은

굶어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곧으면서 유연하고,

유연하면서 추진력이

있는 류성룡의

리더십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

 

 - 옮긴글 -

         

         2024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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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의사의 글 (by 이한기) 평상(平床)/반칠환 (by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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