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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의 비밀

이한기2024.06.15 13:56조회 수 21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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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장군의 비밀!

 

지난 2013년 11월 2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제2 병사묘역..

별세하면서

‘장성묘역 대신

병사묘역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을 남긴

베트남전의 영웅 

고(故) 채명신(蔡命新)

중장(中將 ☆☆☆)

(향년86세)의 삼우제가

치러졌다. 

 

부인 문정인 여사와 아들,

딸을 비롯한 유족들,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추모 예배를 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 자리에선 4일장으로

치러진채 장군의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던

채 장군의 동생 채모(76)

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간 밤샘하며

조문객을 맞으며 쌓인

피로를 걱정하여

“삼우제는 직계가족만

으로 치를 테니 나오지

말라”는 문정인 여사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 채씨는

채 장군이 60년 넘게

숨겨온 또 다른 미담의

주인공이다. 

 

채씨는 채 장군이

1951년 초 강원도에서

생포한 조선노동당

제2비서겸 북한군

대남 유격부대 총사령관

(중장) '길원팔'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던

전쟁고아였다.

 

당시 육군 중령이었던

채 장군은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강원도 내에서 

암약하던 북한군

색출작전을 펼쳤다.

 

채 장군에게 생포된

길원팔은 채 장군의

전향 권유를 거부하고

채 장군이 준 권총으로

자결했다.

 

그러면서 “전쟁중

부모 잃은 소년을

아들처럼 키워왔다.

저기 밖에 있으니 

그 소년을 남조선에

데려가 공부를

시켜달라” 고 부탁했다.

 

적장(敵將)이지만

길원팔의 인간됨에

끌린 채 장군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그 소년을 데려와

동생으로 호적에

입적시켰다.

 

이름도 새로 지어주고

총각 처지에

그를 손수 돌봤다. 

 

소년은 채 장군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에 들어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 유명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채 교수는 10여 년 전에

은퇴했다. 

 

두 사람은 채 장군이 숨질

때까지 우애 깊은 형제로

지내왔다고 한다.

 

채 장군의 자녀들은

그를 삼촌으로,

채 교수의 자녀들은

채 장군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

 

문정인 여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중앙 SUNDAY

기자와 만나 “채 장군이

길원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채 교수를

동생으로 맞은 것”이라며

채 장군이 생전에

길원팔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적장이긴 하지만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문 여사는 "채 장군이 

채 교수(아들이 아닌)를

동생으로 입적한 것은

채 장군의 나이

(당시 25세)가 젊었고

채 교수와의 나이

차이도 11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 교수가)형님이

별세하신 데 대해 크게

슬퍼했다. 

 

나흘 내내 빈소를 지켰다"

고 말했다.

 

채 장군은 총각 시절

본인이 손수 소년을

돌보다 그가 고교생이

됐을 무렵 문 여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주변 사람에게 소년을

맡기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서울대에 진학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채 장군은 북한군

고위 간부가 데리고

있던 고아 소년을

입적시킨 사실이 

문제가 돼 군 생활이나

진급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채 장군에겐 친동생

'채명세'씨가 있었다.

 

하지만 1951년 채 장군이

연대장으로 복무하던

5사단의 다른 연대에서

소대장으로 배속되어서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이에 따라 채 교수는

형제 자매가 없던

채 장군에겐

유일한 동생이 됐다.

 

채 장군은 당시 “그의

인생이 중요하니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여사도 지난 29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절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지내왔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모 신문지는

적장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닌 소년을 동생으로

입적시켜 대한민국의

엘리트로 키운 

채 장군의 선행이 

이념 갈등 해소와

남북 화해의 귀감이

것으로 판단해

기사화를 결정했다.

 

장군은 한국의 태권도를

보급 발전시키는 데

공로가 컸으며

주월 한국군 사령관직을

훌륭히 치러낸 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면전에서 

직접 반대하고

대장 진급에도

탈락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으며 예편하여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지병으로 86세에

운명하였다.

 

수많은 공적에도

장군묘역에 묻히길

거부하고 부하들이

있는 곳 사병묘역에

묻히기를 소망했던  장군,

적장의 간절한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 장군,

적지의 고아를 기르고 

키워 내고도 끝내

비밀로 하고 간 장군,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면전에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 장군...

 

채명신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자

참 군인이 아닐까?

 

호국보훈의 달에

다시 한번

사령관님을 추념합니다!

 

- 옮긴글 -

 

*옮긴이 Note*

KMA 4학년 하계군사

훈련 기간 이었던

 1969년 8월,

 제 2군사령부(대구)를

부대방문 했을 때

제 2군사령관

(군 생활 마지막 보직)

으로 계셨던

채 사령관께서

189명 사관생도들을

일일이 악수하시며

환영해 주시고

다과를 베풀어 주시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채 사령관님의 팔(八)자 

눈썹은  인상적이었다.

국가유공자 묘역과

장군묘역에 안장을

마다하고 전우들이

안장된 병사들의 묘역에

병사들과 함께 잠드신

경우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이었던 일이다.

나의 외람된 생각이지만

채명신 사령관께서 

대장(大將 ☆☆☆☆)으로

진급한 다른 장군들에

비하여 자질과 능력,

 인품이 부족하여

중장(將 ☆☆☆)으로

군생활을 마친 것은

결단코  아니다

아마도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면전에서 반대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리라

 

채명신 서령관은

국민들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았으며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몇 안되는 

참군인이었다.

군인으로써 나라를 위한

싸움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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