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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광림 시인

이한기2024.06.11 11:27조회 수 21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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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광림 

시인 

 

별세 : 2024년 6월 9일.

발인: 6월 11일  오전 9시.

서울대학 병원 장례식장.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엄수된 후에 국립 서울

현충원에 국가유공자로

안장.

 

김종삼, 김광림, 전봉건

"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

 

1953년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직후, 한국시의 우뚝한

산맥을 이루는 김광림,

김종삼, 전봉건 3시인이

합동시집을 엮었다. 

"연대시집"ㅡ어깨동무

시집이라는 뜻.

3시인 모두 북에 고향을

두고 월남한 처지. 외로워

어깨동무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에

이 기념비적인 시집이

간행되었다.

김광림 시인은 전투원으로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전투에 참전을

하였으며 

첫시집 <상심하는 접목>에 

치열했던 전쟁 체험의

시편들을싣고 있다.

김광림 시인은 육군소위

였으며 바로 옆의 전우가

전사하기도 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었다. 

김광림 시인은 백마고지

전투에 세운 공훈으로

국가로부터 은성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로

인증 되었다.

피아 간에 수백 만명이

죽은 전쟁의 포연이

아직도 자욱했던 때

한국현대시사에 우뚝한

업적을 쌓게될 3시인이 

"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강한 생명의지의 시집이며

희망의 전언으로 읽힌다. 

 

<문학사회학적 >관점에서

북에서 월남해온 시인들의

남한 사회 정착과정과,

작품에 나타나는

영향관계를

조명해볼 필요도 있으리라.

휴전 후 70여 년이 지났고 

이제 당사자들도 모두

고인이 되었다.

 

합동시집을 굳이

"연대시집"

이라 표기한 분들의

근원적인 시정신과

희망의지를

생각해보는 새벽이다.

 

[월간 시지 [心象]과 함께]

월간시지 『心象』창간호

(1973. 10)가 발매되면서

한국 시 잡지가 현격한 수준

향상을 이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창간호 3,000부가 매진.

박목월 선생 필생의

노력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잡지였다.

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이형기, 김광림 편집위원,

김종해, 이건청

실무스텝이었다.

내 나이 32, 한창 때였다.

어느새 50여년 세월이

갔다.

찰라처럼 이 잡지는 매호

편집회의를 통해 필자를

선정하였다 .

원고가 도착하면

원고료를 지급하였다.

(나중에는 약속을

모두 지키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편집 의도와 다른

원고일 경우 원고료를

지급하고 게재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시의 경우, 같은 경향

시인들을 묶어 청탁하고

수록 시인 좌담을 실어서

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었다.

대학 강단의 필자들을

널리 발굴해 원고를

청탁하였다.

강단비평을 문학

현장에 접목하려는

시도였다.

서울대 차주환, 김현,

고려대 김우창,  연세대

이상섭, 이화여대 민희식,

충남대 손재준 교수등이

그런 경우였다.

문학 외에도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무용 등

인접 예술의 동향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무용평론

개척자 김영태 시인이

처음 무용평론을

시작한 것도 이 잡지

지면에서였다.

매우 혁신적이고

관심의 폭이 넓은

잡지였다. 

 

신인 작품은 1회 발표로

등단하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잡지가 1회 등단이지만

그 때는

"심상(心象)"이 유일)

당시  권위있는 신인

등룡문으로 문청들의

투고가 엄청 쌓였었다.

 

잡지는 밤에 제작되었다.

종로 관철동에 잡지사가

있었는데, 박목월 선생은

한양대학 강의를 끝내고,

김광림 선생은 외환은행

근무를 끝내고, 김종해는

정음사 편집부 일을, 나는

한양공고 교사 일을

끝내고 달려와 잡지 일에

매달렸다.

통행금지가 있을 때여서

거의 매일 자정 임박해서

집에 닿곤 했었다.

 

나는, 1978년 3월 24일

박목월 선생 작고 후,

<박목월 시인 전권

추모 특집호>

(1978년 5월호)를

간행 5년간 열정을

쏟아붓던 "心象"과의

힘들었던 인연을

끝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무렵의

"心象"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나로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힘든

나날이었지만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매진했던 그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라고 믿는다. 

 

- 옮긴글 -

 

<글 옮긴이  Note >

*고(故) 김광림 시인*

(1929. 9. 21~2024. 6. 9)

함경남도 원산 출생

본명(本名) : 충남(忠男)

필명(筆名) : 광림(光林)

1961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대한민국 국가유공자 

 

*수훈(受勳)*

대한민국 은성무공훈장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수상(受賞)*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주요경력*

장안대 일어과 교수

(1983년 ~ 1996년)

제28대 한국시인협회장

(1992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시인으로 큰 발자국을

남기신 고인(故人)께

삼가 머리숙여

애도(哀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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