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수필: 가려진 시간 속으로의 여행

송정희2016.11.30 16:29조회 수 18댓글 0

    • 글자 크기

수필: 가려진 시간 속으로의 여행


나 어렸을 적, 남자가 되고 싶었다. 아버진 늘 어머니보다 강했고, 무서웠고, 내 두 남동생들은 날 이겼었다. 난 늘 지는 어머니와 내가 싫었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남자로 태어나 군대도 가고, 대통령도 되어보고, 전쟁에도 나가고 싶었었다. 그 어릴적에도.

어제 "가려진 시간" 이라는 영화를 막내 희정이와 영화관에서 보았다.

난 다시 잊혀졌던 그 어릴 적 남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슬그머니 영화 속 성민이가 된다.

초등학생이던 성민이는 믿을 수 없는 마법에 걸려 정지된 시간 속에서 15년을 살게된다. 그 긴 고행의 시간은 실제 세상의 하루나 이틀. 청년이 되어 돌아온 성민이는 옛친구 수린을 찾아간다. 

아니 내가 성민이가 되었다. 수린이는 아직도 초등학생 솜털 가득한 소녀. 이 세상에서 내가 성민이인걸 수린이만 알아준다.

우리는 아직 초등학생이 가질 수 있는 우정 뿐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난 나의 두 친구와 함께였지만 그들은 모두 그 시간 속에서 죽었다. 그 오랜 죽음같은 세상에서 그들은 헤쳐나오질 못했고, 나는 슬픔보다 깊은 슬픔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만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수린이를 만나고, 우리는 또 헤어져 난 그 정지된 시간 속에 이번엔 혼자 갖혀야했다.

그래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간 너머에 있을 수린이 때문에.

난 만났다. 수린이를. 이번엔 30년은지나 수린이가 있는 세상으로 나왔다.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된 수린이를, 운명처럼 알아오고, 나는 이제 초연할 수 있다. 죽음보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기에, 이렇게 난 성민이로 남자로, 그 영화속에 남는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96 브라질리안 넛 2017.06.07 85
695 지인들과의 점심식사 2018.05.29 14
694 염색 2019.01.20 14
693 오늘의 소확행(1월6일) 2020.01.07 15
692 보경이네 (8) 2016.10.27 10
691 데뷔 2017.06.08 23
690 오늘은 흐림 2018.03.05 12
689 오늘의 소확행(11월14일) 2018.11.16 12
688 그리움이 찾아오는 시간 2019.06.12 12
687 오늘의 소확행(12월16일) 2019.12.18 13
686 반달 2020.01.07 10
685 산행 (16) 2016.10.27 6
684 양치기의 주머니 2018.03.05 15
683 사돈이 왔다 2019.08.30 19
682 오늘도 2019.12.18 15
681 김장 2016.10.27 15
680 오늘의 소확행(3월20일) 2019.03.21 16
679 변덕 2016.10.27 8
678 아침기도 2017.04.05 11
677 이른아침 봄비 2018.03.06 18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5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