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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나의 정원

Jenny2016.11.01 20:40조회 수 3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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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 송정희

 

분명 멕시칸 고추씨를 한 통 한 봉지 툭툭 털어 심었었다. 고추씨가 약 스무개 가량 봉지에 들었었다. 작년에는 15개 정도의 싹이 나와 자라서, 여름 내내 따먹고도 남아, 얼려두었다가, 겨우 내내 잘 먹었었다. 작년에 성공했던 경험으로 올 해도 같은 방법으로 봄에 심었는데 고추로 보기에는 떡잎은 딱 두개. 조금 다르게 생긴 잎이 무더기로 땅을 헤치고 나왔다. 오이 아니면 호박으로 보이는 잎들.

일단 물을 잘 주고, 비가 오던 날 모여있던 놈들을 간격을 두고 다시 심어주었다. 전에 남편이 오이와 호박을 심는 것을 본터라, 넝쿨이 올라갈 수 있도록 지지대도 받쳐주었다. 꽃은 노랗게 꽤 많이 피었는데, 열매가 붙은 꽃들은 전혀 피지를 않아 놈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온 봉숭아 씨앗도 정원 앞쪽으로 가지런히 심었다.

농작물 쓰레기를 담는 큰 통 두개의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그 빗물로 정원에 물을 준다. 빗물에 녹아있는 질소 덕분에, 그냥 물보다 식물이 더 좋아한다. 식물도 신분계급이 있나보다. 장미나 고급 관상용 식물들은, 하루만 물을 주지 않아도, 금새 시들시들 해지고 맥을 못추는데, 우리집 정원에서 자라는 들깨 봉숭아 해바라기 분꽃 채송화 그리고 정체파악이 안된 오이 닮은 식물들은 비가 안와도 보란듯이 잘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그래서 나는 정원 양쪽에 있는 빨간 장미와 흰색 링컨 장미에만 집중적으로 물을 준다. 아침 저녁으로. 계란 껍질을 모아, 햇볕에 바짝말려 돌절구에 곱게 빻아, 정원에 뿌려준다. 국수 삶은 물이나 야채 씻은 물도, 식혀서 정원에 준다. 그래서 나의 정원은 그들의 성장하는 소리로 늘 웅성대고 우리집을 찾아오는 이들을 행복하게한다

차를 세워서 현관까지 걸어오는 길이 "꽃길" 이다.

드디어 놈의 정체가 밝혀졌다. 오이도 호박도 아닌 참외였다. 아직 참외가 파란색 일땐, 잎의 색깔과 같아 구별되지 않다가, 노랗게 익어가면서 놈이 참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작년에 내가 먹은 참외씨가 설겇이 물에 섞여 정원에 뿌려졌나보다. 그런데 나는 그 참외들이 전혀 반갑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 뻣뻣하고 질긴 잎과 덩쿨이 다른 것들을 타고 올라가며, 짓밟고 망가뜨려 놓았다. 고작 서너개의 참외를 달리개 하려고, 정원을 온통 밀림으로 만들어 버렸다.

차라리 멕시칸 고추가 나은데...

노랗게 익기 시작하는 참외만 따고,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다. 차라리 내년에는 오이나 호박을 한 모종씩 심어봐야지.

그리고 그 놈때문에 내가 아끼는 흰 링컨 장미 꼴이 말이 아니다. 작년에는 돼지감자가 온통 정원을 점령하더니, 올해는 참외가 나타나서, 폭군놀이를 한다. 그래도 올해는 그 동안 보고 싶었던 봉숭아와 분꽃을 실컷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돌나물도 큰 화분에 잘 살려두어서 내년 봄 나의 식탁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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