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수 - 백석-

관리자2024.01.12 08:13조회 수 10댓글 0

    • 글자 크기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8 간조 - 민구 시인- [책&생각] 세밑, 마흔살 시인의 이토록 투명한 청승 관리자 2023.12.22 10
197 평생 시인의 시집 한 권, ‘숨어 있는 향수’ 관리자 2023.12.22 10
196 제26회 재외동포 문학상 공모 … 오는 6월 30일까지 관리자 2024.05.30 9
195 웃음의 힘 관리자 2024.05.28 9
194 "어머니의 날" 제정의 유래 관리자 2024.05.15 9
193 우생마사 (牛 生 馬 死) 관리자 2024.05.01 9
192 [나태주의 풀꽃 편지] 오래 살아남기 위하여 관리자 2024.04.18 9
191 [축시] 겹경사 - 효천 윤정오 관리자 2024.04.04 9
190 인정人情/왕유王維 이한기 2024.04.07 9
189 마음의 길 관리자 2024.03.14 9
188 우루과이의 한 교회당 벽에 적혀 있는 글 관리자 2024.03.03 9
187 Happy Valentin's Day ! 반달 - 정연복- 송원 2024.02.14 9
186 The $105 Trillion World Economy 관리자 2024.02.13 9
185 함께라서 행복하다 - 이 강흥- 관리자 2024.02.13 9
184 그리움으로 피고, 지고.. 관리자 2024.02.09 9
183 향수 - 정지용- 관리자 2024.02.03 9
182 한국어로 말하니 영어로 바로 통역… 외국인과 통화 벽 사라져 관리자 2024.01.20 9
181 이 나라가 한국 라면에 푹 빠졌다고?…수출국 3위로 떠올라 관리자 2024.01.18 9
180 좋은 사람 관리자 2024.01.18 9
179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밤 두톨에서 영글었다 관리자 2024.01.16 9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30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