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 형도-

관리자2024.01.02 18:03조회 수 11댓글 0

    • 글자 크기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 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2024년 1월 2일 화요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7 눈풀꽃 / Louise Elizabeth Gluck 이한기 2023.11.07 61
496 Anything That's Part of You 이한기 2023.11.11 92
495 나태주 시인님의 시화 감상해 보세요-장 붕익 선생님께서 단체 카톡방에 올려 주셨습니다1 관리자 2023.11.14 40
494 평양아바이순대 33호점 오픈기념 예배-마영애 탈북자인권협회 임원 관리자 2023.11.15 22
493 우주(宇宙)(Universe) 이한기 2023.11.18 54
492 타령(打令) 이한기 2023.11.18 43
491 다산(茶山) 정약용의 노년유정심서(老年有情心書) 관리자 2023.11.21 40
490 검(劍)의 정신(精神) 이한기 2023.11.22 62
489 순수(純粹)의 전조(前兆) 이한기 2023.11.22 106
488 [아메리카 NOW] 여야 정쟁 사라진 로잘린 카터 여사 장례식을 보면서1 관리자 2023.11.30 16
487 산행(山行) 이한기 2023.12.01 59
486 명장(名將) 일별(一瞥)(2) 이한기 2023.12.02 48
485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333)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김일태의 「만다꼬」 관리자 2023.12.02 13
484 ‘아낌없이 주는 나무’ 뒤에 숨은 기가 막히고 속이 뚫리는 156편의 시+그림 관리자 2023.12.02 6
483 착시와 패턴 -제65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가작4 관리자 2023.12.03 44
482 바보같은 삶- 장기려 박사님의 삶 관리자 2023.12.03 7
481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모두 비가 샌다 송원 2023.12.03 9
480 제65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착시와 패턴 심사평 포함 관리자 2023.12.04 6
479 홀로서기 1, 2, 3 - 서 정윤 관리자 2023.12.04 11
478 대부(大夫)(1) 이한기 2023.12.04 77
이전 1 2 3 4 5 6 7 8 9 10... 30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