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그 여름의 펌프물

송정희2019.07.18 07:32조회 수 23댓글 1

    • 글자 크기

그 여름의 펌프물

 

한낮 온도가 90*F가 훨씬 넘어 밖에 차를 세워두고 몇시간이

지나면 핸들이 뜨끈뜨끈, 기어 손잡이도 끄끈뜨끈

무심코 잡았다가 깜짝 놀래 손을 뗀다

이럴때 간절히 떠오르는

옛날 어릴적 살던집 앞마당의 펌프물

한참 손을 담그면 손이 얼얼해질 정도로 시원한 지하수

난 그 물을 좋아해서 할머니는 종종

내게 상추나 쑥갓을 씻어오게 하셨다

하나하나 물에 흔들어 씻어 채반에 건져 툭툭 털어

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던 여름날

어려서도 매운 고추를 잘먹던 특이한 나는

점점 더 매운고추를 자랑삼아 먹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입이 하마만큼 얼얼이 커진 느낌으로 그게 무슨 잘하는 짓인것마냥

허세를 떨었다

매운고추를 먹은 고통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음날 변소에서 대변을 볼때의 그 화끈거림

그래도 왜 그렇게 매운고추를 자랑삼아 먹어댔는지

입속이 화끈거리면 금방 받은 펌프물을 입속 가득 물고

매운 입과 혀를 식히곤했다

물한바가지를 펌프뒷통에 넣고 빈펌프질을 몇번하면

이내 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던 그 마당의 펌프

여름이면 금방 만든 열무김치를 작은 항아리에 담아 고무다라이에

펌프물을 채워 그 속에 담가 두었다 먹는 아삭하고 시원했던 그맛

냉장고가 없던 시절 거기가 냉장고였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펌프는 동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이웃들의 놀이터가 되기도했다

시멘트로 펌프주위에 테둘이를 만들어 그 위에 빨랫판을 걸쳐

방걸레를 방망이질로 하얗게 빨아대던 빨래터가 되던 그 펌프

지금도 땅을 깊이 파면 그 반가운 지하수를 만날 수 있을까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
  • 마중물 한 바가지를 넣고 펌프질을 하면 쏟아져 나오던 차고 시원한 물

    설거지하고 머리감고 빨래까지 해도 마르지 않고 콸콸 쏟아지던 펌푸 물

    먼 추억의 풍경들이 살아서 걸어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916 애팔라치안의 추억 2017.04.03 19
915 술친구 2017.04.03 17
914 비가 그치고 2017.04.03 11
913 Precise V5 2017.04.04 10
912 내 거실의 해시계1 2017.04.04 13
911 뒷뜰의 뽕나무 2017.04.04 20
910 아침기도 2017.04.05 11
909 예술.집을 떠나지 않고 즐기는 여행1 2017.04.05 23
908 약속들 2017.04.05 160
907 또 하루1 2017.04.06 17
906 아름다운 아이들의 죽음1 2017.04.07 15
905 나의 사라는(동생에게 바치는 시)3 2017.04.08 22
904 Yiruma (이루마의 선율)1 2017.04.10 20
903 콘서트가 끝나고 2017.04.10 18
902 530 2017.04.11 28
901 하고 싶었던 말1 2017.04.12 17
900 세상의 이치2 2017.04.14 16
899 이미자의 딸(수필)1 2017.04.14 23
898 충고1 2017.04.15 23
897 회한 2017.04.18 10
이전 1 ... 5 6 7 8 9 10 11 12 13 14... 5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