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어머니와 꽃수레

송정희2017.05.21 18:22조회 수 18댓글 0

    • 글자 크기

어머니와 꽃수레( 수필)

 

어머니가 미국 와계시던 육개월.

아침에 산책을 못하면 저녁에라도 꼭 함께 동네주위를 두시간 정도씩 산책을 했다.

유난히 식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꽃이든 잎이든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으신 분.

감탄사도 어찌 그리 다양하게 구사하시는지...

빨간색도 핏빛같다, 불그족족하다, 불그스레하다, 새빨갛다, 붉다, 발그레하다,연지빛이다,등등

어머니와 같은 길을 매일 걸어도 늘 새로운 길을 걷는것 처럼 신기하다.어머니는 단어의 마술사이시다.

두시간을 거의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집근처 어느 집 앞에 꽃수레 같은 작은 나무수레가 있는데 계절마다 다른 꽃이나 작은 관목을 그 안에 넣어두곤 한다.

어머닌 그 수레를 보실때마다 저건 왜 안 치워. 하시며 역정을 내신다.

나름 장식하느라 때때로 다른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서 내가 보기엔 예쁜 수레인데.

이유인 즉슨.

가난한 세월과 전쟁의 시대를 겪으신 어머니는 시체도 많이 보셨다고 한다. 상여를 태울 수 없이 가난했던 사람들이나 전쟁에서 죽은 적군과 아군의 시체들은 그런 손수레에 실려 가마니로 덮어 시신처리장으로 보내지곤 했다고.

내 눈엔 작고 예쁜 손수레.

어머니의 눈엔 송장을 실어 나르는 구루마.

그제서야 왜 어머니가 그 집앞의 작은 꽃수레를 쳐다보기도 싫어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운반도구 손수레

나 어렷을 적 큰가위를 째깍거리며 동네를 누비던 엿장수의 손수레

높은 언덕위의 집에도 연탄을 운반했던 손수레

행상인의 보따리를 실어나르던 손수레

학교앞 오뎅과 호떡을 팔던 추억의 손수레

때론 죽은이를 태워 나르던 손수레였다.

어머니의 동네친구 꽃순이도 그 손수레에 실려 어디론가 묻힐곳으로 갔던 전쟁통.

어머니가 안계신 지금도 난 그 집앞 꽃수레를 보면 그닥 예쁘지만은 않다. 이제..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96 7월 문학회 월례회를 마치고4 2019.07.14 34
1095 감사합니다4 2019.12.30 44
1094 날 이기는 에보니3 2017.06.15 25
1093 오늘의 소확행(4월19일)3 2020.04.19 53
1092 8월 문학회월례회를 마치고3 2019.08.11 32
1091 부추씨앗3 2017.03.24 18
1090 역전앞 지하다방에서3 2020.02.24 28
1089 6월 문학회 모임(이천 일십 칠년)3 2017.06.13 75
1088 나의 사라는(동생에게 바치는 시)3 2017.04.08 22
1087 비의 콘서트3 2020.02.05 34
1086 에스페란토2 2017.08.24 24
1085 가을이 오는 소리2 2017.08.09 36
1084 싱숭생숭2 2020.02.06 31
1083 치과에서2 2016.10.20 25
1082 등신,바보,멍청이2 2017.06.16 126
1081 문학회 모임 (오월 이천일십칠년)2 2017.05.08 35
1080 허리통증2 2018.09.06 19
1079 막내2 2018.03.18 15
1078 9월을 보내며2 2019.09.26 25
1077 김 쌤 힘드셨죠2 2018.10.02 23
이전 1 2 3 4 5 6 7 8 9 10... 5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