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호박죽

송정희2017.05.12 08:33조회 수 14댓글 1

    • 글자 크기

호박죽

 

속이 샛노란 반토막 호박을 샀다

좀 더 토막을 내 얇게 저미듯 껍질을 벗긴다

이젠 내공이 생겨 쉽사리 껍질을 제거한다

벗겨진 껍질을 거름으로 쓰려고 거름통에 넣는다

 

어렷을적부터 먹었던 호박죽

내 입맛은 날 키워주신 할머니의 입맛이다

한국을 떠나 비로소 그 맛이 그리워

수도 없는 시행착오 속에 할머니의 호박죽을 찾아냈다

그때의 기쁨은 할머니를 뵌듯한 기분

어머니 들으시면 또 서운해 하실라

 

호박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믹서기에 곱게 갈아

슬로우쿡커에 넣고

냉동실에 얼려둔 삶은 강낭콩과 멕시칸콩을 넣고

바다소금으로 간을 한다

쌀가루를 물에 잘 풀어 호박죽물이 끓으면 부어준다

호박죽은 밤새 슬로우쿡커에서 고아진다

 

아침에 일어나 꿀과 계피를 넣고

잘 저어 간을 본다

아 할머니 냄새

돌절구에 찢은 땅콩을 뿌린다

 

후후 불어 한입 입속에서 음미해 보니

할머니 냄새와 어머니 냄새가 가득하더라

친구가 내게 그런다

귀챦게 왜 하느냐고  사먹지

내가 대답한다

사는것엔 내 할머니 냄새가 안나거든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96 어머니와 커피2 2017.04.30 1390
1095 하루의 끝 2018.04.13 534
1094 어느 노부부 (3) 2016.10.10 200
1093 잎꽂이 2018.08.27 169
1092 약속들 2017.04.05 160
1091 선물 2019.07.18 159
1090 조용한 오전 2020.02.01 135
1089 등신,바보,멍청이2 2017.06.16 126
1088 1 2017.01.07 125
1087 부정맥 (4) 2016.10.10 105
1086 세월 2016.11.01 102
1085 정월을 보내며1 2020.01.30 101
1084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 2019.02.16 94
1083 3단짜리 조립식 책장1 2017.02.08 94
1082 세상에 없는것 세가지 2020.03.11 90
1081 새벽비 2017.02.15 90
1080 작은 오븐 2017.02.12 90
1079 브라질리안 넛 2017.06.07 85
1078 애팔레치안 츄레일 첫째날 2016.11.08 84
1077 땅콩국수 2016.10.27 81
이전 1 2 3 4 5 6 7 8 9 10... 5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