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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흑백사진속의 우리 삼남매

송정희2017.04.18 13:27조회 수 1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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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속의 우리 삼남매 (수필)

 

  지난번 미국 오셨을 때 어머니가 지갑에서 쬐끄만 사진 한장을 꺼내 보이셨다'

난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신기해서.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나와 나의 남동생 둘 그렇게 셋이 벽에 기대 웃고 찍은 사진.

  어머니도 당시 우리의 나이를 잘 모르시겠단다. 막내의 나이로 미루어 추정해 보건대 내가 여섯살, 둘째가 네살 그리고 막내가 두살쯤.

여름이었나보다. 눈언저리가 사무라이처럼 올라가게 위로 묶어 올린 머리에 반팔 원피스를 입은 나. 두 동생은 배가 볼록 나오게 뒷짐을 지고 벽에 바짝 붙어 웃는것도 우는 것도 아닌 요상한 표정을 짓고, 누가 웃겼는지 나만 이빨을 다 내놓고 웃고 찍었는데 앞니가 하나 빠져있었다. 그래도 어려서 그런지 영구같지는 않았다.

   난 눈물이 나도록 웃었고 그런 날 어머니는 신기하듯 웃으며 보시고.

왜 이 사진을 지금 보여주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도 옛물건 정리하시다 찾으셨다고 하신다.

여섯살 즈음의 흑백사진속의 나. 묶은 머리는 종일 뛰어다니느라 잔머리가 흘러 땀에 붙어 꾀죄죄했지만 그래도 너무 귀엽고 그게 나였다는게 행복했다.

세상을 몰랐던 시절의 나, 죄가 어둠이 더러움이 무엇인지 몰랐던 때의 나.

통통한 볼살이 예쁘고 흙장난 하는라 손톱밑이 늘 더러웠을 그 때의 나.

두 동생들은 목숨걸고 구슬과 딱지를 지켜냈고, 난 할머니 손에 잡혀 잔치집을 다니며 배를 불렸었다. 잔치집에서 유난히 인기있던 나의 할머니. 친할머니가 아니라 둘째, 첩할머니셨단다.   자식없던 그 할머닌 날 조선에 없다며 거두셨다. 딸처럼.

  지금도 보고싶은 할머니시다.어머니는 그 할머니를 끔찍히도 싫어하시지만.

일본에서 기생을 하셨다는 할머닌 회갑잔치에 초대되어서 늘 장구를 치시며 노래를 부르시곤 하셨다. 여섯살 즈음의 그 할머니는 나의 세상이고 전부였다.어머니가 아시면 또 기분상하시겠지만.

사진은 그냥 어머니께 드렸다. 나보다 어머니께 더 소중한 사진일것 같아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오십년전의 나를 그 흑백사진으로 보며 잠시 타임머신 여행을 한 소중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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