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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하고 싶었던 말

송정희2017.04.12 16:26조회 수 17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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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말 (수필)

 

사고후 머리수술을 받고 5일만에 급히 당신은 우리를 떠났죠'

왜요, 왜 왜

내가 애원했쟎아요. 눈 한번만 떠보라고. 내가 꼭 할말이 있다고.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젖은 거즈를 부탁했죠. 바짝 건조해있는 당신 손발을 좀 닦아주고싶었어요.

손톱과 발톱밑까지 후벼가며 젖은 거즈로 닦고 얼굴도 닦을 수 있는 부위는 다 닦았죠.

셀수도 없는 긴 줄들이 당신에게 피를 빠는 거머리처럼 붙어있어서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가방에 있던 핸드크림으로 꼭꼭 힘주어 발라주었죠.

그래도 당신은 "그만해도 돼." 그런 소리를 안하더라구요.

침대위쪽에 켜있는 모니터에선 당신의 상태가 기하학적으로 그려지고 쳐다보면 볼수록 전쟁영화에서나 봄직한 암호쯤으로 보여 그것과 당신이 무슨 의미일까 머리가 백지화되더군요.

지은인 옆에서 소리없이 울며 떨고 있었지요.

당신 마흔일곱이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마흔아홉에 퇴근길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하셨지요.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시고 친구분도 오토바이를 타시고 뒤따라 오셨고.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차와 정면충돌.

중앙선을 침범해 오던 차의 운전자는 만취상태에 도난차량.

보상금 하나도 없이 어머닌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고 지금까지 장수중이십니다.

누워있던 당신 모습에서 아버지를 만났지요.

연락을 받고 간 나는 영안실에 모셨던 아버지를 아주 잠깐 뵙고 쓰러져 기억도 잘 안나요.

그래도 당신 모습속에 아버지가 계시데요.

당신을 보며 난 울지 않았습니다. 깨어날거라 믿었기에.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당신의 사망.

아이들이 날 안으며 하던 말

"엄만 죽으면 안돼. 그러면 우리 고아쟎아."

그말에 용기를 내 한국친지들에게 당신의 사망소식을 담담히 전했고 다음날부터 장례준비를 했죠.

물론 토마스장로님과 그의 부인 퀴니, 그리고 린다아줌마가 내 수족처럼 움직여주었죠.

함께 영어공부했던 설,명지,미숙,그리고 친언니같은 영순언니가 집안일을 도맡아해주고, 난 심부름만 했지만요. 멍하게.

이미 성인이었을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난 그때 어머니께 어떤 딸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모자라고, 염치없고, 인정머리없던 딸이었네요.

어머니와 난 비슷한 나이에 지아비를 잃고, 지아비들은 비슷하게 오십전에 운명을 달리하고.

아버지는 어머니께 무슨 말을 하고싶으셨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나와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못한걸까요.

꿈에서도 입만 벙긋거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쟎아요.

난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당신 눈 뜨면.

미안했어요,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그리고 고마웠어요, 넘치게 큰 일만 해줘서.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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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님의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이 혹시 부정맥과도 

    연관이 깊지 않을까 하고 돌파리 진단을 해봅니다.

    어렵겠지만, 

    그 모든 것에서 담담해져 부정맥을 순화시키는 것이

    당신이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했던 이들의

    바램일 것이라 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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