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오이꽃

송정희2017.05.02 07:46조회 수 33댓글 2

    • 글자 크기

오이꽃

 

아침에 눈 뜨자 마자

허겁지겁 슬리퍼에 발을 넣고 밖으로 나간다

어제 노란 꽃봉오리였던 오이꽃

드디어 활짝 꽃이 피고

꽃밑에 매달린 이센티미터 가량의 오이가

쬐끔 길어졌다

 

세개의 오이모종이 모두 원통철사 지지대를 붙잡고

마치 체조선수들이 철봉위로 올라가려는 자세로

의연히 나를 본다

절로 물개박수가 나온다

얇은 잠옷사이로 아침바람이 차가워

다시 오마고 약속을 하며 튀듯 집안으로 들어온다

 

거실에 피어있는 꽃들이 날 비웃는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그래 그래 나 그런 인간이다 왜

꽃들의 비웃음을 간신답게 내치고

겉옷을 하나 더 걸치고 오이꽃 보러 나간다

 

우리 밤에 좀 추웠는데 잘 견뎠죠

하며 내게 응석을 부린다

그럼 그럼 얼마나 잘했는데

난 그 응석을 넙죽 받아준다

 

옆에 있는 빨간 장미들이 웃겨 하며 삐친다

내가 귓속말을 해준다

쟤들은 한해밖에 못살아 그러니까 예뻐해야지

느네는 계속 나랑 살쟎아

빨간 장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화해조정자인 나

그렇게 정원겸 텃밭에 평화를 가져오고

거실로 들어오니 아직 꽃들이 삐쳐있다

해줄 수록 양양이라니까

흥 누가 겁나

이렇게 나의 집안팎은 사랑싸움이 한창이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2
  • 누군가는 모종 사는 일을

    "몇푼 한다고 그래 사먹지?"

    라고 말하던데

    경이로운 과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요?


    줄리아씨의 정원은 작은 우주이자 주인의 놀이터네요.

    계속 소식 전해주세요

  • 부지런하셔야 좋은 오이가 맻힘니다

    무궁무진한 시상에 경의를 포함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76 뒷마당의 아침1 2018.12.11 21
275 뒷마당에서 외치다 2019.05.03 19
274 뒷마당서 또 외치다 2019.05.30 19
273 뒷뜰의 새와 나 2017.06.07 17
272 뒷뜰의 뽕나무 2017.04.04 22
271 뒤척이던 밤이 지나고 2017.08.23 23
270 두통 2019.05.07 16
269 두번째 요가 클래스 2018.09.13 15
268 두달 2019.03.06 13
267 두껍아 두껍아1 2017.08.31 23
266 된서리 2020.01.22 20
265 돼지 간 2018.09.27 10
264 동트는 풀장 2017.05.17 14
263 동내산책 2019.09.05 20
262 돌나물꽃 2019.05.07 14
261 돌나물 물김치 2018.02.27 13
260 도토리묵 2019.11.17 20
259 도시락1 2017.04.27 24
258 도서관 (2) 2016.10.20 21
257 도서관 (1) 2016.10.20 14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5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