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老교수의
이야기
아래 글은 십여 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연세대 수학박사로
안동교육대학,
단국대교수를 역임한
분의 글입니다.
친구 한 사람 잃고 나니,
남은 당신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소.
어제는 지나갔으니
그만이고, 내일은 올지
안 올지 모를 일,
부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아끼는
어리석은 짓이란 이젠
하지 말기오.
오늘도 금방 지나간다오.
돈도 마찬가지요.
은행에 저금한 돈,
심지어는 내 지갑에
든 돈도 쓰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니란 말이오.
그저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오.
뭘 걱정 해?
지갑이란 비워야 한다오.
비워야 또 돈이
들어 오지.
차 있는 그릇에 무얼
더 담을 수 있겠소?
그릇이란 비워 있을 때
쓸모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오.
뭘 또 더 참아야 하리까!
이젠 더 아낄 시간이
없다오.
먹고 싶은 거 있거들랑
가격표 보지 말고
걸들린듯이 사먹고,
가고 싶은데 있거들랑
원근 따지지 말고
바람난 것처럼 가고,
사고 싶은 거 있거들랑
명품 하품 가릴 것 없이
당장 사시오.
앞으론 다시 그렇게
못한다오.
다시 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있거들랑 당장
전화로 불러내
국수라도 걸치면서,
하고 싶던 이야기
마음껏 하시오.
그 사람, 살아서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른다오.
한 때는 밉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던
당신의 배우자, 친구,
그 사람 분명 언젠가 당신
곁을 떠날거요.
그렇지 않은 사람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오.
떠나고 나면 아차하고
후회하는 한 가지,
"사랑한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못한 거
그 가슴 저려내는 아픔,
당하지 않은 사람 절대
모를거요.
엎질러 진 물 어이 다시
담겠소?
지금 당장 양말
한 짝이라도 사서 손에
쥐어주고 고맙다
말하시오.
그 쉬운 그것도 다시는
곧 못 하게 된다니까.
그리고 모든 것 수용하시오.
어떤 불평도 짜증도
다 받아 들이시오.
우주 만물이란 서로
다 다른 것,
그 사람인들 어찌 나하고
같으리까?
처음부터 달랐지만
그걸알고도 그렁저렁
지금까지
같이 산 거 아니오?
그동안 그만큼이나
같아졌으면 되었지!
뭘 또 더 이상 같아지란
말이오?
이젠 그대로 멋대로
두시오.
나는 내 그림자를
잃던 날!
내일부턴 지구도
돌지 않고 태양도 뜨지
않을 줄 알았다오.
그러기를 벌서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매주
산소에 가서 그가 가장
좋아하던 커피 잔에
커피를 타 놓고
차디찬 돌에 입을 맞추고
돌아온다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이 짓밖에 없다오.
어리석다고, 부질없다고,
미친 짓이라고 욕해도
난 어쩔 수 없다오.
제발 나같이 되지 마시오.
이것이 곧 당신들의
모습이니
"살아있을 때" 라는
공자도 못한
천하의 명언을
부디 실천하기 바라오.
지금 당장 넌지시
손이라도 잡고 뺨을
비비면서 귓속말로
“고맙다”고 하시오.
안하던 짓 한다고
뿌리치거들랑
“허허”하고
너털웃음으로
크게 웃어 주시오.
이것이 당신들께
하고픈 나의 소박하고
간곡한 권고이니,
절대로 흘려듣지 말고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 끝나버릴
남은 세월 부디 즐겁게
사시구려!
- 어느 노교수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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