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있다 - 맹재범 : 한겨울 냉면집에서 시를 썼다···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

관리자2024.01.15 01:37조회 수 12추천 수 1댓글 0

    • 글자 크기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401141148001#c2b

 

기사 원본을 보시기 원하시는 분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한 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 있다

 

- 맹재범-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2024년 1월 14일 주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0 My life has been the poem.... 관리자 2024.01.09 10
419 거리에 소리 없이 비 내리네 - 아르띄르 랭보- 관리자 2024.01.09 18
418 비오는 날의 기도 - 양광모- 송원 2024.01.09 15
417 방송중학교 다니며 시집 펴낸 팔순 할머니 “황혼길 아름답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리자 2024.01.10 6
416 술잔을 권하노라 - 우 무룡- 관리자 2024.01.10 12
415 꽃 - 로버트 크릴리- 관리자 2024.01.10 15
414 개여울 - 김 소월 관리자 2024.01.11 14
413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 솟아오른 지하 황주현 관리자 2024.01.11 13
412 국수 - 백석- 관리자 2024.01.12 10
411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관리자 2024.01.12 5
410 평상이 있는 국수 집 - 문태준- 관리자 2024.01.12 12
409 칼 국수 - 김 종재 - 관리자 2024.01.12 5
408 떠도는 자의 노래 - 신 경림- 관리자 2024.01.12 7
407 걸림돌 - 공 광규- 관리자 2024.01.12 13
406 조선초대석 - 박정환 전 플로리다 한인연합회장 관리자 2024.01.12 14
405 경쟁(競爭)?, 교감(交感)? 이한기 2024.01.12 23
404 행복한 존재 - 김 은주- 관리자 2024.01.13 6
403 제임스 조이스 연구 개척한 원로 영문학자 김종건 고대 명예교수 영면 관리자 2024.01.14 6
402 풀꽃 시인 부부 관리자 2024.01.14 16
401 탈무드 인맥관리 17계명 관리자 2024.01.14 11
이전 1 ... 5 6 7 8 9 10 11 12 13 14... 30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