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로, 가을에 길을 묻다
석정헌
팔레트 위에 어지럽혀진 물감
큰 붓으로 푸른색 듬뿍 찍어
백지에 확 뿌려 놓은 것 같은 하늘
붉은 빛이 도는 나뭇잎 사이사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한 줌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빛바랜 삶
무책임한 허공을 읽은 가슴은
아직도 기묘한 균형을 유지하지만
그럴수록 희미해진 눈은
왜 자꾸 사나워지는지
마음은 푸른 하늘을 향해 애원해도
육체는 점점 바닥을 기고
이승이 짧은 천국이라는 듯
쪽잠에 든 강아지 부럽기만 한데
가을 소리에도 꿈쩍 않는 허한 가슴
껍질만 남은 귀에
나뭇잎 부대끼는 소음만이 메아리 치고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올려다본 하늘
이제 길을 묻는다 나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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