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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이한기2024.05.25 10:31조회 수 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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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 영웅 

                           아해 김 태형

 

“여기 누워있는 아테네 사람은

마라톤 전장의 숲에서 크게

공을 세운 아이스킬로스

(Aeschylos)다. 그의 용맹한

행위는 페르시아인들이 잘

알고 있다.” 위는 희랍 비극의

시조(始祖) 아이스킬로스의

묘비명 전문이다.

어디에도 그가 희랍 비극의

명작들을 쏟아낸 장본인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또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스승이라는

문구도 없다. 위기에서 나라를

지킨 호국정신만을 두각

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일생 일군 업적에 상관없이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구하는데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 영웅의 칭호는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마라톤 전장(戰場) 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이름이

페이디피데스

(Pheidippides) 다.

그는 고대 희랍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기원전 490년

마라톤 숲에서 아테네까지

42㎞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승전보를 전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다.

페이디피데스로 인해

오늘날의 마라톤 경기가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아이스킬로스와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희랍의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Marathon

숲에 함께 있었다니…. 

 

사십 대 후반부터 팔십 대

초반까지 마라톤을 한 나는

고대 올림픽이 열리던 희랍의

올림피아 마을을 찾아 남다른

감회를 갖기도 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마라톤

전장을 돌아보고 희랍의

영웅들과 희랍인의 자유를

위한 시를 남겼다.

그리고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페이디피데스에게

보내는 시를 썼다. 페르시아를

무찔러 기쁨에 열광하던

페이디피데스가 전력 질주한

후 아테네에서 죽음에 이르는

장면을 녹화한 듯 노래한다.

“진흙 속에 번져나가는

포도주처럼/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쁨!/그리고 가슴이

터지도록 벅찬 환희!/

그가 전해온 전장의 소식/

우리는 끝내 승리했다고---/

아-, 페이디피데스!//”

 

호국 영웅의 묘비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우리의 가곡이

있다. 1969년 발표된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이다.

언제 들어도 가슴을 적신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이름

모를 비목이여….

육이오 (6.25)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웅들을

추모하는 가슴 아픈 노래다.

아이스킬로스의 묘비에는

이름이라도 새겨져 있지만

6.25 전장에서 쓰러진

무명용사의 돌무덤엔 이름

석 자도 없이 십자 나무만

세워져 있다.

산골짝 여기저기엔 한국군과

U.N.군 병사들의 살이 썩어

흙이 되고 뼈는 서로 엉키어

낙엽과 흙에 덮여 있었다.

 

한편 모윤숙 시인은 6·25동란

중 조국을 위해 전사한 이름

모를 한 육군 소위를 추모하는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발표한다.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이 詩 속에서 무명용사의

영령은 모윤숙 시인에게

화답하는 듯하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아이스킬로스는 이름을

남겼고, 비목에서의 국군에겐

적어도 비목이 있지만,

모윤숙의 젊은 장교는

이름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 영웅인

것은 똑같다. 샤를 드골은

프랑스 제5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온 프랑스 국민이

우러러보는 국가적 영웅이었다.

그는 고향 향리 공동묘지

한구석에 묻혔다.

평생 사랑하던 장애아 딸

옆에 묻힌 묘비에는 그의

이름과 생몰연대 이외에 아무

문구도 없다. 그는 국가적

영웅들이 묻히는 팡테옹도

거절했다고 한다. 한평생

군인으로 정치가로 대통령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었어도 딸을

항상 맘속에 품고 살았다.

가곡 비목의 혼령과 시인

모윤숙의 혼령도 전장의

참혹함 속에서 고향에 두고

온 친구를, 사랑하는 소녀를

먼저 마음에 떠 올렸을 것 같다.

그리고 드골이 딸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았듯이 우리

6. 25의 전사들도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할 어머니를

그리며 그의 품속에

잠들었겠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들

영령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호국 영웅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 큰 공을

세우고 비명에 생을 마친 몇

무장들이다. 군주는 무능하고

조정 대신 (문신)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을 때도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쳤다. 조선 초 여진족을

정벌한 남이 장군, 조선

중기에 청나라 토벌의

선봉장이던 임경업 장군,

임진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우선 떠오른다. 나라를 위한

충성심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삼았던 썩은 위정자들

속에서도 이들의 충성심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었다.

국가의 미래보다는

사리사욕에 눈먼 문신들이

정권을 휘두르던 병약한

나라가 장장 500년이나

살아남은 것은 아마도 이들

호국 영령들 덕택이

아니었을까?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면

가끔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묘소를

찾는다. 다부동 전투에서

적의 침공을 선두에서

막으며 북한군의 남진을

낙동강에서 저지해

대한민국을 사수한 국민적

영웅이다. 이런 그를 반민족

친일파로 몰아 대전 현충원

안장을 무산시키려는

세력들도 있었으니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하고

마음이 새까맣게 타기도

했다.

이젠 그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묘소는 늘 화환에 쌓여

있다. 그리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참배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고 현충원

기록물에 반민족 친일파라는

기록도 지워졌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또한,

아버님 묘소 인근 현충원

4 묘역에는 제2연평해전에서

순국한 6명의 호국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다.

그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로 모아

표지판도 새로 세웠다.

현충원을 찾는 많은 방문객의

발길을 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져 조국을 지킨 호국 영령들

앞에 경건한 묵념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도 천근만근

무겁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호국

영웅들 앞에 부끄럽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17일 

 

* '아해'님이 보내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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