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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보석같은 나라였다

이한기2024.02.18 13:09조회 수 2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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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한국인은 원래 선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고는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때에도 "고수레"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하여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 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사는

보석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때문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를 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어령 장관의 부친은 6·25의

피난 때에도 남의 밭을 밟지

않으려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가족들이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다.

백의민족의 가슴에는 이런 선한

피가 흐른다.

선한 마음은 적장의 전의까지

빼앗아버리는 힘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봄

‘사야가(沙也加)’라는 스물 두 살의 일본 장수가 조선땅을 침략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인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진격하다 피난을 떠나는 농부 가족을 보았다.

왜군들이 총을 쏘는 와중에도

농부는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젊은 장수는 자기보다 노모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칼날처럼 번뜩이던

살기는 한 백성의 지극한 효심에

순식간에녹아내리고 말았다.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를 어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왜장 사야가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착한 백성들을 죽이는 전쟁은

불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사야가는 부하 500여명과 함께 조선에 투항하기로 결심했다.

승전을 거듭하던 침략군이

'인의(仁義)'를 이유로 힘없는

나라에 집단망명한 사례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조선에 투항한 사야가와 그의

병사들은 자신의 동료인

왜군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가 바로 김충선이다.

백범 김구가 꿈꾼 나라는

선(善)으로 우뚝서는

'문화의 나라'였다.

김구는 백범일지에‘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強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김구가

사랑한 조국이 맞는가.

적국의 장수까지 무장해제시킨

선한 나라의 모습인가.

나라의 물질은 유사 이래

가장 부유해졌으나

정신은 더 가난해졌다.

그 사실이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

 

 -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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