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귀는 천년
裕堂/박홍자
이민 온지가 16년세월을 맞이 했고 2003년에 이곳에 왔으니 13년을 애틀랜타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 왔다.
마트에서 반찬코너를 책임지고 1년을 직접 만들어 파는 담당자의 부엌떼기 생활도 했고
잔치집 캐더링 가계에서 음식도 해 보았다. 처음은 챙피 했지만 안해 보던 일을 하니 참으로
자신만만 하고 재미있어서 내생애 처음으로 부엌에서의 경험은 나를 진정 사람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게 한 힐링의 세월 이였다
한국에선 사무실에서 펜대만 굴리다가 이것 저것 바닥 생활이랄까 2, 3년을 마감하고 문학회
활동 기타 고향인의 모임 회장, 공공단체의 회장을 하면서 얻은 경험적인 이야기의 이글 제목
이다
고등학교 동창을 오랬만에 고향 기독교 병원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친구 어머니가 중풍에 쓰러지셔서 코마상태에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신지가 10년이 넘는데
이친구 8남매의 제일 큰딸인데다 자기 애도 3명, 어머니 병수발 까지 긴세월을 하니 얼마나 고생스럽고
괴로웠을 꺼라고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어머니 얼굴을
네려다 보며 “엄마 이젠 더 이상 고생 하지 마시고 눈 감으세요” 라고 했단다
갑자기 어머니의 눈동자가 이친구를 노려 보면서 눈을 흘기더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정말로“듣는 귀는 천년”이란 말이 맞는다고.
더 한가지 생각 나는 것은
1961년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대학도 졸업을 하고 고교 동창회 모임을 갖게 되었다 거의
45년만에 한 20여명이 모였다 그중에 키가 큰쪽에 있었던 친구가 내 옆에 와서 손을 만지면서
중학교 2학년때 얘기를 꺼낸다
" 야? 너는 코가 왜 이렇게 생겼냐? 하고 내가 그친구의 코를 만졋다고?"
아풀사 그친구는 뽀얀이 예쁘고 코도 너무 예쁘고 콧날이 오똑 하고 얌전 하고 여자 다웠다
와!!!! 어찌 할꼬? 그예쁜이 한테 내 코가 더 못난 것이 이 무슨 망언을 했을까?
지금도 그생각이 나면 부끄럽고 쥐구멍을 찿던 생각이 난다 이것 말고또 하나
나의 경험적인 이야기는 6, 7년전 어느단체의 회장을 할때의 일이다
새로 한국에서 부임해오신 높은 분과 내가 하던 단체의 회장을 넘겨준때의 회장등
몇몇이 모여 인사도 나누고 있는 중인데 다른 단체의 회장도 해본 그 지인이 나보다 한참
어린데 입에서 “그단체는 이름만 있지 활동도 안 한다고” 그말을 듣는 순간 이 인간을
확 갈겨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아직도 그사람만 보면 꼴보기 싫고 한심 하기 그지 없는
것이 불쌍 하기도 하다
그순간이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간이 많이 흘러 갔는데도 내귀에서는 그소리가 그얘기가 잊혀
지지가 않으니 “듣는 귀는 천년”을 간다는 것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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