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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서두 시-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있다, 문의 마을에 가서, 여름 가고 여름

관리자2024.01.14 12:38조회 수 13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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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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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있다

 

 

- 김 승희-

 

꽃들이 반짝반짝했는데
 그 자리에 가을이 앉아 있다
 꽃이 피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검붉은 씨가 눈망울처럼 맺혀 있다
 희망이라고…
 희망은 직진하진 않지만.

 

 

 

 

문의 마을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여름 가고 여름

 

- 채 인숙-

 

대학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훔쳤다
 바코드니 전자출입증 따위는 
 없던 호시절이었다
 스웨터 안쪽 바지춤에 
 시집을 두 권이나 꽂고
 호기롭게 팔짱을 끼고 도서관을 나왔다
 문학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길래 
 대학을 갔는데
 존경할 만한 스승도 없고 
 가슴 뛰는 수업도 없었다
 다행히, 아까운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면
 책이라도 훔쳐야 한다고 가르쳐 준 
 친절한 선배가 있었다
 지금도 내 책꽂이엔 대학도서관 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힌 누런 시집 몇 권이 
 무슨 전리품처럼 꽂혀 있다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맹랑한 도둑년이었다
 김수영과 최승자는 늘 선수를 빼앗겼다
 그때도 분했는데 지금도 분하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치고
 번번이 훔쳐 쓸 궁리를 한다.

 

 

2024년 1월 14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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