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을 위한 일곱가지 방법
글 : 강은교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써라 주위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자료가 되는 느낌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되면, 시를 쓰는 어느 날 그것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 단지 감상만 갖고서는 시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시는 감상을 넘어서야 나올 수 있다.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개인을 넘어서야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해서 쓰면 '나'에게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쓰라. 단, 시를 쓰는 일이란 끊임없이 누군가를 격려하는 일임도 기억해야 한다. 웅덩이 쪽 모래를 손짓하는 새 아침별이 저녁별을 손짓하는 새 햇빛 한 올이 제 동무 햇빛을 부르러 간 새 나의 시에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누가 감동해 주겠는가.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 보라. 문학 평론가 염무웅은 이렇게 충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가?'라고. 우리는 신념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미국의 자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그는 자연에서 생의 전율을 느끼라고 충고한다. 연애가 주는 스파크, 음악 등이 아니겠는가. 허나 살다가 보면 이 때의 전율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감동이 혹은 전율이 스무살 때처럼 순수하게 올 수 있을까? 그 순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는, 국화빵의 틀에 이미 찍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만약 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려져 있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만 술을 마셔야 하지 않을까 감상적인 시는 분위기로밖에 남지 않으며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시가 긴장하여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성취하는 순간 깜짝 놀랄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 정신을 지니자. 몸의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예를 들어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시는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시와 유행가의 차이는 그것이 의미 있는 침묵인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긴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데, 만약 설명하려다 보면 감상의 넋두리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보다 침묵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라르메는 말했다. 살아야겠다." 역설적으로 들리긴 하겠지만,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되지 않을까? |
출처: 솔잎의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夕塘/김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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