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박정원
아름다워라, 상큼한 낙엽내음도
수미산으로 퇴근하는 새소리도
나를 에워싼 어둠마저도
다 품고 살면서
괜찮은 척 모르는 척 지낼 순 없나
입을 잠시도 놔두지 않는 물비늘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가는 강물아
여전히 내 속을 베어가는 구나
기왕이면 품위 있게 깨져라 터져라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마라
강물은 강물답게 노을은 노을답게
물속에서 산수화를 치다가
서산 정수리에서부터
까맣게 메워오는 붓 한 자루
미안하다
제대로 그리지 못해 더욱 눈부신
아름다움에게
울음을 울음답게 터치 못해
더욱 서글픈 슬픔에게
같은 허공 같은 세대에 태어나
갖은 풍파를 겪는 사람들에게
평등하다지만 평등하지 않은
인생에게 오지 않을 듯 갔다가 다시
오는 태양에게.
*2023년 <한국작가회의>
연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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