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수 - 백석-

관리자2024.01.12 08:13조회 수 15댓글 0

    • 글자 크기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2 칼 국수 - 김 종재 - 관리자 2024.01.12 16
201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 솟아오른 지하 황주현 관리자 2024.01.11 16
200 코미디언 양세형, 시인으로 인정받았다…첫 시집 '별의 집' 베스트셀러 기록 관리자 2024.01.08 16
199 가을 무덤 祭亡妹歌(제망매가) - 기 형도- 관리자 2024.01.02 16
198 첫 눈 - 이승하 관리자 2023.12.17 16
197 밥풀 - 이 기인- 관리자 2023.12.17 16
196 세월아 - 피천득 관리자 2023.12.06 16
195 바보같은 삶- 장기려 박사님의 삶 관리자 2023.12.03 16
194 이승하 시인의 ‘내가 읽은 이 시를’(333)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김일태의 「만다꼬」 관리자 2023.12.02 16
193 미해군 전함(戰艦) 이한기 2024.07.16 15
192 인생의 3가지 이한기 2024.07.19 15
191 한국 역사의 숨은 진실 이한기 2024.06.26 15
190 사랑굿 - 김초혜 관리자 2024.06.16 15
189 현충일-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관리자 2024.06.06 15
188 나그네 관리자 2024.05.30 15
187 "어머니의 날" 제정의 유래 관리자 2024.05.15 15
186 김지수 "멋진 질문을 필요없다" 관리자 2024.05.07 15
185 친구야 너는 아니? - 이 해인- 관리자 2024.04.16 15
184 중용中庸의 덕德 이한기 2024.04.12 15
183 [축시] 촛불잔치 -박달 강희종- 관리자 2024.04.04 15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34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