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들이 잦아드는 밤이 되면
뉴욕을 떠나 뉴올리언즈까지 가는 암트랙 기차소리가 들린다.
건널목 근처에서 울리는 기적소리는 기차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온다.
송창식 '고래사냥' 속 삼등 완행열차가 불확실한 미래와 방황 사이의 젊은이들을 위한 기차라면,
조수미의 '기차는 8시에 떠난다' 속 카테리나행 기차는 나찌에 저항하는 연인을 떠나 보내는 비통의 기적이 울리는 기차일 것 같다.
미국생활 21년만에 여객기차 대신 풍경기차(scenic train)여행을 했다.
가을 단풍철 예약을 놓쳐 아쉬움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환호와 시선에서 소외된 앙상한 나무들을 위로하러 갔다 되레 위로를 받고 온 기분이 들었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의 기차는 궂은 비 속에서 출발했다.
북부 조지아 블루리지에서 출발해 국유림을 끼고 토코아강을 감고 달리는 기차는,
왕복 두시간 동안 나름의 일정으로 승객들을 즐겁게 했다.
사진을 찍어 원하는 승객에게 팔고, 스낵칸에서는 블루베리빵과 음료도 팔았다.
칸마다 한명 씩 배치된 가이드가 기차가 지나는 곳의 유래와 특징을 설명하고, 기차칸을 돌며 존 댄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부르던 초로의 컨츄리 송 가수 부부의 노래도 여운이 남았다.
의자를 마주보게 배치한 기차는
용산역을 떠나 남으로 달리던 내 소년시절의 완행열차를 닮아 있었다.
외가 평택을 가기 위해 어머니와 나는 가까운 서울역보다는 용산역에서 기차를 탔다.
값싼 완행열차는 용산역에서만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를 타러 가기 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작은 신경전이 있었다.
어머니는 기차 안에서 지출을 줄이려 나에게 간식을 먹이려 했지만,
나는 기차 타기 전 짧고 계산된 금식을 하곤 했다.
그 금식 끝에는 기차안에서 파는 삶은 계란과 사이다 같은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계란을 먹고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어머니 친구 금단이네 이야기가 단골로 등장했다.
저 쪽에 앉은 말쑥한 남자가 자꾸 우리를 쳐다 본다는 이야기 끝에는 벌떡 일어나 그 쪽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 청상이셨던 어머니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같은 것이 묻어있던,
낯선 남자와의 달콤한 눈싸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너끈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작은 눈을 부라리며 그 말쑥한 남자를 쏘아 보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쩌면 짙은 안경 낀 이는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황당한 나의 주장은 제2의 이승복이 되고 싶은 나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반향이었던 것 같다.
미군부대 후문에서 숙박업을 하시는 할머니가 나를 위해 아껴놓은 미제 초코렛이랑 C ration에 대한 기대 섞인 이야기가 이어지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끝에는 무명천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손수건이 바빠지기도 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은하철도 999를 타고 메텔을 따라 온 철이 처럼 멀리 와 있고,
내 어머니는 기차 난간같은 무거운 walker를 붙잡고, 아들 손 잡고 가던 친정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친정 식구들은 모두 저 세상 사람들이 되고 낯선 이들이 살고 있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친정을.
역병이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공기처럼 자유로운 어느 날!
십자가같은 walker를 미는 어머니를 앞세우고 용산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여행을 꿈꿔 본다.
https://youtu.be/8ed3uTfoiUI
https://brscen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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