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기다림이다.
창구 직원의 나태한 시선을 책망하듯
보란듯이 기계에서 보딩패스를 뽑아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허리띠를 푸는 일은
매번 번거롭고 머쓱했지만,
주머니를 탈탈털며 시큐리티를 통과했다.
비행기가 지척에 있는 게이트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불난집 며느리'처럼 서둘던 조바심도
한숨쉬며 곁에 앉는다.
몇은 이어폰에 눈을 감은 명상형,
몇은 마시고 씹기에 입이 분주한 식탐형.
무심의 베일을 쓰고
유심히 그들을 살피는
나는 음흉한 관음형.
라스베가스는 욕망이 절제를 지배하는 곳이다.
베가스 공항 게이트를 들어서니
slot 머신이 열병하듯 줄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죄책감없이 패스트 푸드로 허기를 달래며,
마셔도 목마른 소금물같은 콜라를 들이키니,
알싸한 쾌감이 목을 타고 내리며 트림 추임새까지 넣는다.
성채에 귀족은 없었다.
호텔의 화려한 군무속,
흐물 흐물한 술과 질펀한 유혹들 사이로
짜릿한 윙크와 휘슬이 난무했다.
상아색 긴다리 무희들의 화사한 웃음폭탄에
비무장 병사처럼 고꾸라지는 내 정조.
천박한 시녀와 충직하지 않는 시종들이 만든 소음으로
샹들리에가 고공시소를 타는
베가스 성채의 파티는 불쾌했다.
신데렐라도 가버린 자정이 지나도록
성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귀향은 고단한 위로다.
섞이지 못하고 섬처럼 떠돌았던 베가스를
추억의 책갈피에 꽂고 집으로 오는 길.
오래된 먼지와 빛바랜 액자들이 유령처럼 걸려있고,
더 이상 쿠키도 굽지 않는 나의 집.
백열등에 부딪혀 별빛으로 부서지던
아이들 웃음소리도 사라진지 오래,
침묵이 껴껴이 쌓이고 신간의 주문도 끊긴
인적드문 골목의 책방같은 집으로
고서처럼 윤기없고 추레한 남자가 돌아왔다.
*글쓴이 노트
친구랑 만남을 환락의 도시 베가스로 정한 것은
스무살 즈음 친구라
활기를 리콜하고 싶어서였다.
허나 활기를 만끽하기엔
우리의 육체적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 오류를 확인한
씁쓸한 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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