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울 때는 '신만고강산' 장민 버젼을 듣는다.
잠자리 날개같은 삼베옷을 걸치고 삼신산을 지나 단발령을 넘어 낙산사 근처 구름위를 덩실거리는
상상을 하며 들뜬 기분을 만끽한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The Danish national symphony ochestra의 'God farther'를 듣는다.
트럼펫솔로 시그날이 두 엄지발가락으로 온몸을 세우는 듯한 긴장감을 주며, 간단없이 이어지는
만돌린솔로에는 시실리 섬이 눈앞에 펼쳐지고 알파치노분 마이클과 섬처녀 애인이 보디가드를
뒷세우고 걷는 장면도 오버랩된다.
연주가 절정에 도달할 즈음엔 그들사이 에서 심벌즈를 힘껏 내리치며 시름을 털어내는 나를 본다.
물이 가득한 장화를 신고 밤길을 걷는 심정으로 세상에서 멀어지던 때가 벌써 1년전이다.
내우외환은 잔인한 커플이 되어 나를 붙들고 늘어졋다.
할미를 잃은 서희의 심정이었던거 같기도 하고, 열차밖으로 보이는 라라를 부르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지는 유리 지바고의 심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만고강산'도 'God father'도 하릴없는 것이 되었고, 눈뜨면 가야하는 일터도 함께 먹고 자야하는
가족도 가혹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유심하게 때론 무심하게 세월은 흘렀다.
세월은 예외없이 내 상처 네 상처를 버무려 무위의 작품을 뽑는 매직을 부렸다.
배우자를 보내고도, 자식을 앞세우고도, 그림자같은 강아지와 생이별하고도 다시 두발뻗고 침대에 눕질 않는가.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을 견디어 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옳았다.
"삶의 밧줄에서 자꾸 미끄러진다면, 매듭을 만들어 붙잡고 매달려라"라는 일갈에 내가 동의했으므로...
2019 문학회 송년모임에서 작은 매듭을 만들고 왔다.
나의 매듭만들기에 동참한 묵묵한 문우들의 존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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