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NYT 이어 美비평가도 격찬한 한국詩 대모 김혜순 작가

관리자2024.03.24 15:57조회 수 8댓글 0

    • 글자 크기

 

https://m.mk.co.kr/news/culture/10972025

기사의 원문을 읽으시려면 위의 링크를 클릭하신 후 읽으실 수 있습니다

 

 

 

NYT 이어 美비평가도 격찬한 한국詩 대모

 

김 혜순 시인

 

새의 시집

 

-김혜순-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하는 여자를 보고도

시가 모르는 척하는 순서

여자는 죽어가지만 새는 점점 크는 순서

죽을 만큼 아프다고 죽겠다고

두 손이 결박되고 치마가 날개처럼 찢어지자

다행히 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종종 그렇게 날 수 있었다고

문득 발을 떼고

난간 아래 새하는

일종의 새소리 번역의 기록

그 순서

 

밤의 시체가 부푸는 밤에

억울한 영혼이 파도쳐 오는 밤에

새가 한 마리

세상의 모든 밤

밤의 꼭지를 입에 물고 송곳같이 뾰족한

에베레스트를 넘는 순서

 

눈이 검고 작은 새가

손으로 감싸 쥘 만큼 작아진 새가

입술을 맞대어도 알아듣지 못한 말을 중얼거리는 새가

새의 혀는 새순처럼 가늘고

태아의 혀처럼 얇은데

그 작은 새가

이불을 박차고 내 몸을 박차고

흙을 박차고 나가는 순서

 

결단코 새하지 않으려다 새하는 내가

결단코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라고 말하는 내가

이 삶을 뿌리치리라

결단코 뿌리치리라

물에서 솟구친 새가 날개를 터는 시집

 

시방 새의 시집엔 시간의 발자국이 쓴 낙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연필을 들고

가느다란 새의 발이 남기는 낙서

혹은 낙서 속에서 유서

 

이 시집은 새가 나에게 속한 줄 알았더니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는 순서

그 순서의 뒤늦은 기록

 

이것을 다 적으면

이 시집을 벗어나 종이처럼 얇은 난간에서

발을 떼게 된다는 약속

그리고 뒤늦은 후회의 기록

 

 2024년 3월 24일 주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8 생과 사 - 지천 ( 支泉 ) 권명오.- 관리자 2024.02.21 6
87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관리자 2024.02.14 6
86 이둠을 지나 미래로 - 침묵을 깨고 역사 앞에 서다 - 관리자 2024.02.09 6
85 내 고향 부여 -김동문- 관리자 2024.01.30 6
84 동백꽃 지는 날 - 안도현- 관리자 2024.01.30 6
83 노후찬가(老後讚歌) 관리자 2024.01.29 6
82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관리자 2024.01.29 6
81 도서출판 문학공원, 김영수 시인의 ‘탐라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펴내 관리자 2024.01.29 6
80 민족대표 한용운 선생… '님의 생가'를 찾아서 관리자 2024.01.26 6
79 제임스 조이스 연구 개척한 원로 영문학자 김종건 고대 명예교수 영면 관리자 2024.01.14 6
78 행복한 존재 - 김 은주- 관리자 2024.01.13 6
77 방송중학교 다니며 시집 펴낸 팔순 할머니 “황혼길 아름답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리자 2024.01.10 6
76 남해금산 - 이 성복- 관리자 2024.01.02 6
75 빈 집 - 기형도- 관리자 2024.01.02 6
74 그 사이에 - 정 현종- 관리자 2024.01.01 6
73 제65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착시와 패턴 심사평 포함 관리자 2023.12.04 6
72 천만매린(千萬買鄰) 관리자 2024.06.27 5
71 윤동주 서시 해서과 해 관리자 2024.06.27 5
70 광야 이육사 관리자 2024.06.27 5
69 Happy Father's Day - Happy Runners Marathon Club 061624 관리자 2024.06.16 5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