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겨울에도 나무는 불신의 벽을 허문다
석정헌
나무가 한 곳에 서 있다고
세상을 모른다
갇혀 있다 하지마라
벗은 가지
먼 산기슭 아지랑이 아롱 거리며
하나 둘 움을 튀우고
눈부신 꽃을 피우며
벌 나비 불려 모아
제 몸을 내어 주고 수태를 하여
붉게 타 오른 태양 아래
튼실한 몸을 키워 짙어진 녹음
먼 길 가는 나그네의 발걸음 죽이고
땀을 식힌 흔들리는 이파리
열매 맺힌 계절
온갖 들짐승 토실토실 살 오르고
오래된 담벼락 담쟁이 붉게 물들며
하나 둘 떨어지고
감나무 꼭대기 까치밥 위태롭게 간들거릴 때
하얀 눈이 내린다
어지러운 세상 눈으로 도배한
이런 날도 뿌리는 땅 속에서 쉬지 않고
인간이 허물지 못하는
불신의 벽을 허물며 뿌리를 뻗어 가고 있다
누가 나무를 움직이지 못한다고
갇혀 있다고 하며
세상을 모른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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