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고사가 끝나고
전장에서 돌아와 갑옷을 벗은 듯한 후련함과
시간의 홍수속에서
무언가 극적인 것을 갈구하던 차에,
절친의 '한산도' 한개피를 뿌리치지 못하면서
나의 끽연은 시작되었다.
19년 동안 곡식과 청량한 물에 익숙했던 입맛과 뇌는
스펀지 처럼 니코틴과 독성물질에 길들여져,
친구에게 구걸하다 나중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담배살 돈을 마련했었다.
하루종일 담배를 빨아보지 못한 날은
발정난 똥개처럼 장초를 찾아 다녔고,
낯선이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느끼기 위해
그들 옆을 지나며 심호흡을 하기도 했었다.
어쩌다 사교에서 혈관속에 알코올이 돌면
온몸은 요동을 치며 니코틴을 찾았다.
술한잔이 만든 환상속에서 피우는 담배는
절정이며 우주이자 상실이며 죽음이였다.
아무런 이상도 추구도 없이 줄담배를 피우던 서른살 무렵
형벌처럼 가슴이 아팟다.
들숨마다 뻐근하고 묵직한 통증이
아직은 선홍색일 심장 어딘가를
누르고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계속되었다.
입에서 구수한 시가의 냄새를 풍기는
의사는 엑스레이 소견은 없으나
흡연을 용의자로 몰아 세웠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금연과 흡연의 줄다리기는 수년을 이어졌고
도미하며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지인들과 작별을 하고
태평양 상공에서 담배와 석별을 했다.
검지와 중지사이를
심산유곡의 안개처럼 배회하는
담배 연기와 더불어,
젊은 날의 정처없는 시름과
하릴없는 사랑의 미련들을 실어 보내던
그때의 내가 추억처럼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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