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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있다
- 김 승희-
꽃들이 반짝반짝했는데
그 자리에 가을이 앉아 있다
꽃이 피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검붉은 씨가 눈망울처럼 맺혀 있다
희망이라고…
희망은 직진하진 않지만.
문의 마을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여름 가고 여름
- 채 인숙-
대학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훔쳤다
바코드니 전자출입증 따위는
없던 호시절이었다
스웨터 안쪽 바지춤에
시집을 두 권이나 꽂고
호기롭게 팔짱을 끼고 도서관을 나왔다
문학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길래
대학을 갔는데
존경할 만한 스승도 없고
가슴 뛰는 수업도 없었다
다행히, 아까운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면
책이라도 훔쳐야 한다고 가르쳐 준
친절한 선배가 있었다
지금도 내 책꽂이엔 대학도서관 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힌 누런 시집 몇 권이
무슨 전리품처럼 꽂혀 있다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맹랑한 도둑년이었다
김수영과 최승자는 늘 선수를 빼앗겼다
그때도 분했는데 지금도 분하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치고
번번이 훔쳐 쓸 궁리를 한다.
2024년 1월 14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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