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말한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삶’은 절대적으로 옳다.
많이 둥굴둥굴해진 50대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극단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내가 20대에 처음 접한 철학책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실존주의가 있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귀결되었고, 젊디 젊었지만 미학은 어디에도 없고 보이는 것마다 회색빛이고 단절 그리고 단절이
었다.
그 중에서도 니체의 “자살하고 싶은 생각은 크나큰 위로이다. 그것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끔찍한 밤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이다”라는 말에 불확실한 나의 미래와 갈 곳 몰라하는 젊고 깊은 밤을 하얗게 지샌 적이 몇날이던가?
최근의 신문을 장식하는 뉴스는 그렇다.
스와니의 젊은 남자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지내다가 부양금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아 법원 출두를 기다리다가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인 이유로 911에 전화를 해 출동한 소방관을 붙잡고 인질극을 했다.
그리고 공권력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에게도 이른 아침 짭짤한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를 부치는 금발의 아내를 엉덩이로 스치는 거리에서 새로뜯은 향기로운 그라운드 커피가 머그잔을 채우는 동안, 늦잠에 취해 침대위에서 꿈틀거리는 철부지 아들의 향기나는 엉덩이를 간단없이 때리며 기상을 재촉하던 아름다고 나른했던 아침이. . .
같은 날, 한인운영 어학원 원장과 그를 도와주는 직원들이 이민세관국의 단속에 압수수색과 체포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숲을 보지말고 나무를 보기로 하자.
어학원에서 불법1-20 발급한 대상에는 유흥업 종사하는 여성들도 있었다는 소식에 부끄러움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내 눈시울을 뻘겋게 긁고 갔다.
유흥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거의가 정상적인 절차로 미국에 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한국에서의 삶은 어쩌면 궁상의 바닥을 치고 어렵고 간난한 상황에 밀려 막다른 골목에 섰던 자들일 것이다.,
어쩌다 흔하디 흔한 대학이라는 간판을 딴 여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격화된 신체적인 조건에 들지 못하면, 또 한국사회가 정해놓은 정형화된 스펙이 아니면 설자리가 없는 허울뿐인 대학졸업장은 그들의 너저분한 현실에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음을 짐작하는 것도 고난도의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의 참담한 젊음을 기다리는 것은 밝고 희망찬 내일의 기상보다는 ‘술과 장미’의 공간이 더욱 쉽고 손내밀기 쉬었을 것이다.
비록 돈이 오고가긴 했지만 이들이 타국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장치를 마련해 준 어학원의 공로(?)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통속적인 민족주의일까?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일용할 양식과 거처를 위해 살아간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정해진 규칙과 도덕의 테두리에서 그것들을 해결하지만, 아름답고 고운 꽃과 자연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음습한 곰팡이나 응애같은 것들이 공존하듯이 어떤 이들은 다수가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 모진 삶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서 멀찍히 간격을 유지하며 사는 자들도 있지만 어쩌다 우연히 그들과 섞여사는 것도 피할수 없는 현실이다.
겨우 누추를 면한 내 식사와 잠자리에 그들이 밟힌다.
휘청이는 다리로 삶의 무게를 다 견디고 결승전에 다다른 숨가뿐 아빠를 기다리다 공중산화한 보스톤의 소년도. .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삶’도 언젠가는 다행스럽게도 종말을 고하리라.
어느 날, 우리들도 모든 것들과 일별하고 백골이 되어 범속한 곳에서 벗어나리라는 바램으로 봄날을 견딘다.
(Mar.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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