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인지 그림인지
석정헌
빈 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
손마디가 뭉툭한 나무는
생채기를 벌리고
얼음 밑을 흐르는 개울물 믿고
푸른 잎맥을 만든다
한 계절을 떠메고 갈 것 같았던 기개는
와글와글 거리는 귓가에
눈 앞은 점점 희미해져 버려
정신마져 혼미하여
안간 힘으로 버티는 마지막 계절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머리는 딱딱하게 굳어있지만
이제 막 찾은 감격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도 쓰고 싶고
찬 바람 밀고 탁 터진 꽃도
뜨거운 태양 아래 짙푸른 숲도
생을 다한 이파리 붉은 단풍도
벌판 넘어 하얀 산도 쓰고 싶은데
막힌 머리 혼돈 쓰럽고
빈집 담벼락에
낮게 자리 잡은 낙서처럼
무엇인지도 모를 글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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