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드처럼 자르르 윤기가 흐르고
치렁 치렁하던 머리는
허수아비 혼자 지키는 늦가을 수수밭처럼
마르고 부석해진지 오래
수정에서 유리였다
우유빛으로 변한 눈동자는
오믈렛처럼 얇은 눈거풀속에서 안식
밀랍처럼 진득 하고
꽃잎처럼 파르르 하던 입술은,
남겨진 반죽처럼
바삭해져 합죽이
더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렵니다
넝마같은 뱃가죽이랑
요트 돛 라인처럼 매혹적이던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던 날렵한 선은
뒷마당에 쓸모없는 빗자루처럼 말라 비틀어져
부질없네요.
검은 머리 가발을 씌우고
붉은 연지를 바르고
아이보리 드레스를 입히고
이제 당신을 떠납니다.
이 안치소를 떠나면
혹시 산 언저리에서 바람으로 만나더라도,
저 강둑에서 안개로 만나더라도
당신을 모르는 걸로 할게요.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그리워한 자들의 안위도
전하지 않을게요.
나는 시신 단장사일 뿐이니까요.
*시작노트
'시신 단장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해
상상속에서 그 역할을 해봤습니다.
일년전 세상 뜬 동네친구 시신도 떠올리면서...
이러다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ㅎ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