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내 귀밑 흰머리를 본 딸이
"당장 염색해 아빠" 불호령이다.
지 결혼식이니 내가 봐주기로 하고
장모님 안입는 브라우스를 걸치고 염색을 했다.
신랑쪽 하객의 홍수 속에서
간간히 우리 하객을 만나는 일이
고독한 일이었으나,
"이것을 견뎌야 내 딸이 잘사느니라"
괘변을 되뇌이며 종아리에 힘을 주었다.
예식 내내 싱글 벙글인 주인공들을 보며
식전 손수건을 챙기던 아내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웨딩케익을 자르고
키스타임을 지나 부케를 던지는 사이,
무대와 따로 잡담으로 지루해 하는
하객들을 보며,
에모리 캠퍼스에서 소박한 원피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던 지인이 생각났다.
"우리 없이 시모와 결혼준비 하느라 애썼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폐백차림으로 벌받는 아이처럼 불편하게
앉은 딸에게 덕담을 던졌더니,
반달모양으로 웃던 눈에서
유리 구슬같은 물방울이 소리없이 떨어진다.
이때다 싶었는지
아내의 손수건도 분주히 눈가를 훔친다.
몇은 무료주차 확인을 물었고,
몇은 애썼다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으며,
당신 딸 결혼식에도 멀쩡했다던 누님은
아직도 눈이 벌개서 머슥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난리통에 살아 난 사람들 처럼
두손을 꼭 잡고
아내와 나는 숙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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