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좋고 몸에 좋다는 생강주.
지천 ( 支泉 ) 권명오.
1958년 무명시절 최불암 ( 최영환 )씨와 함께 소극장 신무대실험 극 회를 창립하고 연극활동을 할 그 당시 우리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 연극 연습을 할 때는 객체인 작품에 열중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연극연습조차 할 수가 없을 때는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돈도 없는 처량한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이영익씨와 함께 왕십리 배추밭 인근 최불암씨 집에 모였다. 때마침 집에 계신 어머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며 생강주가 선물로 들어온 것이 있다면서 같이 한잔 하자고 했다. 불암이 어머님은 명동에 유명한 다방 ( 은성 )을 경영 하셨는데 그 당시 은성다방은 유명 문화예술인들이 예술향을 꽃피웠든 안식처와 쉼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 때문에 그 자리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중지를 모아 은성에 대한 기념비를 세워 놓았다. 불암이 어머님은 나이에 비해 멋지고 개방적이면서도 지성이 넘치신 분 이였고 아들친구들을 아들같이 대해 주셨다. 어머님은 생강주 한 두 잔 드신 후 다방에 가야 된다고 하시면서 저녁을 시켜 놓고 생강주를 잔뜩 사 놓고 가셨다. 우리는 신나게 매콤 달콤한 생강주를 마시며 콩이야 팥이야 연극예술이 어떻고 유신론 무신론 사실주의 실용주의 개똥철학에다 쎅스피어, 궤테, 톨스토이, 피카소, 미켈란제로, 네오날드다빈치, 베토밴, 모찰트, 헤밍웨이까지 들먹이면서 열변을 토해가며 세상이 모두다 내 것 인양 기고만장 떠들며 마시고 또 마셨다. 담배꽁초 주어 피우고 땡전 한푼 없어도 어떻게 하던 막걸리 소주잔을 기울이고 살았든 그 시절 연극에 미처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소극장 운동을 함께 했던 무명의 소극장 창시자들이 훗날 연극, 영화, 방송극에 극 작가, PD, 연기자들이 되고 스타가 됐다. 우리는 계속 신나게 매콤 달콤한 생강주를 마시면서 서로 잘났다고 헛소리, 큰소리 치고 떠들다가 헤어진 후 청량리 하숙집에 도착해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속이 아프고 마구 뱃속이 뒤틀리고 이상해 토하고 난 다음 다시 누웠는데 뱃속에서 전쟁이 났는지 태풍이 불어 닥쳤는지 장이 뒤틀리고 요동을 처 사경을 헤매면서 밤새도록 토하고 또 토했다. 다음날 하루 종일 몸이 아파 초주검이 된 체 꼼짝 못하고 죄 없는 생강주만 원망을 했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약한 편인데 친구들과 떠들면서 마시는 것이 좋아 분수없이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 불암이는 빽알 7독고리를 혼자 마실 정도로 주량이 대단했다. 나는 다음날 그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엊그제 나는 생강주를 마시고 죽다가 살아났는데 너희들은 괜찮으냐고 물으니 킬킬 대면서 말도 말아 자기도 죽을 번 했고 영익이도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지옥이라도 같이 갈 친구가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의탁 심 때문일까? 어쨌든 맛이 있고 몸에 좋다는 것도 과하고 지나치고 넘치면 화가 되고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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