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옷장속의 가을
살아오면서 저의 생각들은 많이도 변했어요.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변했고 좋아하는 색깔도 음식도 성격도 변했지요.
그런데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가을을 좋아했거든요.
큰 도시는 아니지만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만 가면 논과 들을 볼 수 있었지요. 과수원도요.
추수를 끝낸 논을 난 참을 좋아했었습니다. 타는 듯한 단풍도 아니고 황금 이파리 같은 은행나무도 아닌, 곡식단이 작은 인디언 움막처럼 세워져있는 빈들이나 논을 나는 참 좋았어요.
조부모님도 부모님도 농사와는 무관하신 삶을 사셔서, 저는 농사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곡식단 밖에 다른 것이라고는 없는 그 들판이 어느 때부터인지 내 정신세계의 큰 축이 되었었지요.
일년동안의 수고와 고단함이 쉼의 미학으로 남는 그런 광경
그 빈들에 서면 세상의 모든 농부들의 땀과 그들의 걱정, 희망, 행복을 느낄수가 있었지요.
듬성 듬성 서있는 곡식단 사이로 겨울이 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 미국에 산지 어언 10년이 넘었네요.
이제 고즈넉한 한국의 빈들을 보지못하지만 가을 바람이 그리운 그 향기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 내게 실어오네요.
거실마루에 쏟아지는 햇살을 나는 조금 훔쳐 비어있는 내 옷장에 숨겨봅니다.
비어 있던 옷장 한 구석에서 예전에 느꼈던 빈들의 곡식단의 비릿한 향기가 납니다.
내년 가을이 다시 올때까지 나는 그 향기를 숨겨두려고요.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이 올때까지 나는 그 향기와 함께 할 것입니다.
옷장 속의 옷을 입을 때마다 나는 나의 그리운 고국의 가을과 함께 나이가 든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도 함께 느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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