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죽
속이 샛노란 반토막 호박을 샀다
좀 더 토막을 내 얇게 저미듯 껍질을 벗긴다
이젠 내공이 생겨 쉽사리 껍질을 제거한다
벗겨진 껍질을 거름으로 쓰려고 거름통에 넣는다
어렷을적부터 먹었던 호박죽
내 입맛은 날 키워주신 할머니의 입맛이다
한국을 떠나 비로소 그 맛이 그리워
수도 없는 시행착오 속에 할머니의 호박죽을 찾아냈다
그때의 기쁨은 할머니를 뵌듯한 기분
어머니 들으시면 또 서운해 하실라
호박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믹서기에 곱게 갈아
슬로우쿡커에 넣고
냉동실에 얼려둔 삶은 강낭콩과 멕시칸콩을 넣고
바다소금으로 간을 한다
쌀가루를 물에 잘 풀어 호박죽물이 끓으면 부어준다
호박죽은 밤새 슬로우쿡커에서 고아진다
아침에 일어나 꿀과 계피를 넣고
잘 저어 간을 본다
아 할머니 냄새
돌절구에 찢은 땅콩을 뿌린다
후후 불어 한입 입속에서 음미해 보니
할머니 냄새와 어머니 냄새가 가득하더라
친구가 내게 그런다
귀챦게 왜 하느냐고 사먹지
내가 대답한다
사는것엔 내 할머니 냄새가 안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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