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 /김복희
작년 여름에 새로 이사 온 낯선 분이 계셔 내가 먼저 다가갔습니다. 홀로 사시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건강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명문 부산여고졸업 이라는 것도 알게 됬습니다.
나는 부산으로 피난 갔던 얘기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보다 몇 년 아래지만 ‘워커’를 사용하고 있어 친구로 도움을 주며 지내고 싶었습니다.
고인은 일직이 남편을 잃으시고 외아들을 남편처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따로 사는 아드님의 동선을 꽤 고 있었어요. 그 아들 역시 이 시대에 볼 수 없는 대단한 효자였습니다. 이웃이 모두 그런 아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때로 건강문제로 비관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자씨는 성품이 명량하여 낭 낭한 목소리로 농담도 잘하고 또 나를 무척 좋아하여 아들이 사온 빵과 과자를 손수건에 싸서 ‘워커’를 밀며 나를 찾아 오군 했습니다.
고인은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음식도 잘 하며 아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대단해서 당신이 환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무리하게 부엌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매일 매일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들 바라기” 어머니셨지요
TV가 잘 안 나와 ‘러시아 월드컵’ 축구 중계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복자씨가 어느 날 아침 응급실로 실려 간 후 다시 호스피스로 옯겨 간 날 “권사님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라는 전화를 하셨어요 내일 점심때 방문하겠다고 약속 했것만 그 순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호스피스 직원의 얘기를 들으니 바로 가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다음날 찾아 갔을 때는 깊은 잠속에 빠져 눈도 뜨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멀리서 따님이 왔을 때 무의식이지만 잠 시 눈을 떴었다고 들었어요 세상을 하직하면서 사랑하는 따님들을 한번 더 보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큰따님이 옷을 사 보냈다고 기뻐하며 자랑하더니 두 따님들 모아놓고 꽃길 따라 천국으로 가셨군요 부지런히 시어머니를 찾아뵈던 착한 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의 슬퍼하는 모습을 지금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시겠지요
침대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고 ‘워커’를 힘들게 밀고 다닐 염려도 없고 참 편안하고 좋으시겠어요.
예쁘게 웃는 모습이 떠 오릅니다.
잘 가요 복자씨... 안녕 !
우리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에요
2018년 7월-23일 허복자씨를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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