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미군병사 /김복희
젊어서는 12월이 되면 서울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들리고 성탄절을 맞을 준비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유치원 시절은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 준비로 거의 매일저녁 교회선생님 댁에서
친구들과 모여 노래와 춤을 연습하였다
어머니는 성탄절에 입을 예쁜옷을 준비하여 잘 대려서 벽에 걸어놓으시고 몇 번씩 다시
입어보라고 하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성탄절이면 주일학교 행사로 연극과 노래와 춤을 추었다
낮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회에 가서 매일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어머니가 데리러 오실 때 까지 집 생각도 숙제생각도 잊고서 ...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연극을 하는데 객석에 앉아 있던 엄마가 나의 연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엄마무릎에 안겼던
어린 동생이 엄마가 우시는 것 보고 갑자기 교회가 떠나가게 큰소리로 울었다
난 동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얼마나 난처했는지 안절부절이었다.
극의 내용은 친어머니가 안계시어 계모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교회를 못가게 하여 울며 기도하는 장면 이었다
연극을 본 어머니가 내가 얼마나 연기를 실감나게 잘하던지 울었다고 하시며 아버지에게
"내가오래 살아야지 계모 밑에서 불쌍하게 살게 할 수는 없어요" 라고 하였다
고등학교시절의 성탄절은 성극과 새벽에 성도의 집을 돌며 새벽 송을 부르던 생각을 잊지 못한다
1954년 크리스마스 새벽, 멀리 불광동에 사시는 권사님 댁에서 새벽송을 마치고 나오는데 부근에 미군부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펑펑 내리는데 초소엔 미군 소년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만히 가만히 닥아가서
등을 밝히고 그 앞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찬송을 불렀다 처음엔 웃음 지으며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듯하던
소년병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한 쪽 발로 눈을 꾹꾹 다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고향의 가족생각이 났겠지...
목이 메었지만 더 큰소리로 같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또 불렀다 "메리크리스마-스" ----
성탄절이 돌아오면 해마다 그 소년병이 떠오른다. 지금은 내가 미국에 살고 있으니 그 소년병의 눈물이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나도 늙었고 그 소년도 나만큼 늙었겠지... 생존해 계시다면 그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눈이 많이 내리던 한국의 성탄절 새벽을 잊지
못할것이다
아틀란타에도 금년 성탄절에 눈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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