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옹
조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자식들 만날 기대로 불편한 몸으로 먼 길을 다녀 가신지 벌써 1년이다.
아버지의 건강을 궁금해하는 나를 위해 동생이 설치해 놓은 카메라로 휴대폰을 통해 자주 접촉하여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잠을 청하던 일들이 거의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미국에서 카메라를 통해 보면서 주무시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와 가끔씩 내는 신음 소리를 들으며 이만리 밖에서 매일 가슴만 조이며 지내고 있었다.
3월경, 밤 늦게까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잠들었던 새벽에 막내 동생이 전화를 했다.
숨쉬기 힘들어 하시어 병원에 왔는데, 급한 상황은 모면했지만 신장이 너무 망가져서 혈액 투석을 계속 해야 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며칠 입원하고 혈액투석을 하면서 다행스럽게 혈색도 돌아왔다.
일주일에 3회 투석을 하고 경과를 봐서 2회로 줄여 보자는 소견과 함께 퇴원 허가를 받았다.
퇴원후에 코비드19로 떠들썩한 때 병원 방문도 쉽지 않아 다시 일반 병실에 입원하고 투석을 받기로 했다. 점차 건강도 많이 회복되면서 기력도 많이 좋아지자 동생은 나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온 가족이 모여 있던 저녁이라 예뻐하시던 손녀딸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오랜만에 밝게 웃으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표현은 서툴러도 잔정이 많으셨던 아버지, 보고 싶은 가족들과 돌아가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식들의 부족한 위로라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못내 눈물샘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이민을 결정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르게 아들의 이민을 원하지 않으셨지만 아들의 결정을 묵묵히 지켜보시기만 했었다.
미국으로 향하던 날 아버지는 착잡하셨는지 집에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갈 시간이 되어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두 팔을 벌리시며 한 번 안아보자 하시던 아버지...
‘잘 살아라. 도착하면 연락하고’
짧은 인사와 함께 한 아버지와의 포옹에 가슴으로 전해오는 심장의 울림은 지난 반백년간의 어색함을 깨트렸고, 등에서 느껴지는 손의 진동은 아버지의 숨은 사랑을 고스란히 허파 속 깊은 곳까지 채우더니 눈물로 바뀌어 초라한 아버지의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쉽지 않았던 이민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 생활의 여유도 생기고 부모님의 미국방문도 2년에 1번 정도로 최대 6개월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그렇듯이 정착하기전까지는 항상 시간에 쫓기어 살고 있어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귀가하여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
두 분이 미국에 매번 오실 때마다 말도 모르고 길도 모르니 함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자식들 올 때만 기다리며 6개월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가셨다.
하지만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자식들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시다며 편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간다는 두 분에게 항상 죄송할 따름이었다.
세월에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건강도 약해지시고 어머니께서는 유방암 판정으로, 아버지는 심장 판막 승모근 파열로 병원에 계실 때도 미국에서 마음만 아파하며 바라보았던 기억도 있다.
어머니의 유방암은 잘 치료되어 회복되었지만, 가끔 연락하는 화상통화에서 점점 악화되는 아버지의 건강 상황은 생전에 다시는 못 뵐 것 같아 함께 계셨을 때 편하게 모시지 못한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한국의 동생들과 통화를 하면서 병원과 유명한 의사를 찾아 아버지를 치료해 보려 노력한 보람이 있어 감사하게도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이 되셨다.
몸 관리만 잘 하시면 미국에 방문할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아버지도 가족들도 희망을 갖았다. 2019년 초,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남동생한테 다녀오신 아버지는 짧은 시간이지만 비행기 안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어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오실 수가 있었다.
2019년 5월
애틀랜타 공항 입국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국 절차를 마치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달려가 아버지를 힘껏 안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과 귓가를 울리는 거친 숨소리가 온 몸에 전율하며 다시 만나 긴 포옹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계획된 3개월 체류 기간은 예전의 6개월의 반 밖에 되지 않아 어느 때보다도 빨리 지나갔다.
이 때가 지나면 더 이상 생전의 아버지를 뵐 수 없을 것 같아 가능하면 시간을 내어 함께 지냈다.
오지 않기를 애써 밀어 내도 무심한 날은 찾아오고 다시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하는데, 공항내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안내방송만 떠들며 우리들의 이별을 독촉하였다.
보안 검색대를 향해 무거운 발을 옮기는 아버지에게 13년전 사랑하는 아들을 이국 멀리 보내야했던 그 심정을 이제야 고스란히 받으면서 둘만의 깊은 정을 나누며 힘껏 껴안았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맞닿던 아버지의 볼에서 받은 따뜻한 온기는 먼 훗날 다시 만날 때까지 가져갈 마지막 포옹으로 남았다.
만남과 헤어짐
조동안
멀리 있어 함께 못 한
애틋한 그리움
가슴에 안고 들어선
공항 입국장에
세월의 상처 안고
지팡이 의지한 걸음
생전에 뵙지 못할까
긴 나날 애태웠던
늙은 아들 향해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오신 아버지
짧은 일정 모자란 시간
살뜰히 아껴와도
앞서 찾아온 괘씸한 날
약속은 못해도
재회를 기대하며
잡았던 따뜻한 손
이별의 두려움 숨기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뒷모습 쫓아
이대로 望父石 되고
먹먹한 가슴으로 남는다.
화상전화를 통해 밝고 환한 모습으로 웃으며 가족 모두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3일후 2020년6월9일 저녁에 동생한테 연락을 받았다.
‘오빠! 아버지께서 주무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 주무시는 것처럼 얼굴이 아주 편한 모습이야. 마지막으로 자식들 모두 잘 만나고 편한 마음으로 하늘나라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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