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와 나 사이 - 이 생진-

관리자2024.05.02 01:41조회 수 10댓글 0

    • 글자 크기

 

 



아내와 나 사이

 

 

 

 

詩 人 / 李 生 珍 (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詩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李生珍 詩人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 와 낭송하는 ‘나’ 와

그것을 듣고있는 ‘나’ 를

온전한 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 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너무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도록 화이팅! 아자아자! 힘내세요!

 

* 김남호/문학평론가

 

 

※오늘따라 몇 번이나 보았던 이 글을 또 읽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1일 수요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 명언名言 일별 一瞥 이한기 2024.04.29 22
128 이- 멜 주소 변경 왕자 2015.08.20 4129
127 우주(宇宙)(Universe) 이한기 2023.11.18 54
126 빈교행(貧交行)/두보(杜甫) 이한기 2023.12.29 64
125 12월 저녁의 편지 송원 2023.12.22 13
124 산중문답(山中問答) 이한기 2024.01.19 44
123 반갑습니다 석정헌 2023.04.10 141
122 그렇게 못할 수도 이한기 2024.06.27 16
121 가시/정호승 이한기 2024.06.09 19
120 공空의 진리眞理 이한기 2024.02.26 32
119 새해를 맞는 노년의 연애 이한기 2024.01.03 59
118 사람 사이 공식公式 이한기 2024.03.02 29
117 죽은 형을 그리며 시를 읊다/연암박지원 이한기 2024.04.11 23
116 홍 홍보부장님 부탁 keyjohn 2015.07.18 49
115 행복한 존재 - 김 은주- 관리자 2024.01.13 6
114 명언(名言) 이한기 2024.06.17 38
113 쑥스러운 봄 - 김병중- 관리자 2024.05.03 8
112 작품 업로드 시켜주세요 keyjohn 2015.02.25 171
111 꽃 - 로버트 크릴리- 관리자 2024.01.10 15
110 그대를 처음 본 순간 - 칼릴지브란- 관리자 2024.02.12 11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1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