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를 위한 변명
석촌 李寧熙
붉은 칸나가 정절을 지키려고
호신용 은장도를 품고 서 있는 정오
여름 무더위도
몸이 오싹한지 파르르 떨고 있다
산화제단(散花祭壇) 아래
염탐 하던 바람의 시퍼런 칼춤에
선혈이 낭자하다
아, 붉은 것이 저 붉은 유혹이 온통
미치게 하는구나
칸나를 위한 변명이라니요. 칸나를 위한 찬가를 이렇게 소름 돋게 그려놓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립니다.
5년 전, 15시간 장거리 여행을 가기 위해 차량점검을 맡기고 기다리며 우연히 비치된 모일간지신문에 실린 "칸나를 위한 변명" 시를 읽고 감전된 이후로 족저근막염이 찾아와 아직도 걸음이 불편합니다.
옛날 옛적에 굳은 절개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긴 타원형 잎}를 품고 다녔다지요. 그러나 요즈음 백주대로에 잘못 보이면 불법무기소유로 오인 받아 경찰서로 갈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눈 뜨고 코 베이는 혼란한 시대에 아무리 흔들림 없이 살려고 해도 세상의 사기 바람(잎을 흔드는 바람)에 꼼짝없이 당해 피눈물 흘리며 사는 일도 다반사 입니다. 그렇지만 저 위대한 자연의 붉은 유혹(붉은 꽃)과 서슬 시퍼런 칼춤(바람에 흔들리는 잎)에 산화재단(떨어진 목숨이 아니라 꽃잎)이 되어 미친다 해도 행복하렵니다.
시인은 칸나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칸나의 특징을 독특한 비유로 승화시키며 사물을 통한 정서를
형상화 하여 구체적으로 가시화 시켰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가히 시선의 경지에 다다른 듯 합니다.
야생화 시인 배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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