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공연처럼 /김복희
올 9월에는 나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행사가 두 번 있었다.
시니어 합창단의 제5회 정기연주회가 있고 뒤이어 내 이름으로 가을맞이 시 낭송회가 있다
시니어 합창은 합류한지 3년째이고 시낭송회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래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엔‘서울 중앙방송국’어린이시간에 독창도 하며 노래 잘하는 어린이었다.
유치원시절부터 교회 어린이 연극에 참여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장래 오패라 가수가 꿈이었다. 예술제에서는 노래와 연극으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내 노래(소프라노)가 시끄럽다며 성악가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불행히도 6.25사변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음악대학 진학을 내려놓고 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는 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노래보다 연극에 빠져서 오직 연극만이 희망이고 보람이 었다. 오락으로 여겼던 TV 출연은 남편의 퇴직과 아들의 유학으로 생활 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어서였다
20년을 TV드라마를 해도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거북했다 도통 보람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직 연극만 사모하며 살고 있었다
이젠 80이 넘었지만 의욕은 아직도 세상 뜨기 전에 좋은 연극 한편 남기고 싶다.
미국에서는 여의치 않으니 가끔 이제라도 역이민을 생각해 보며 미국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소리는 예전 같지 않지만 교회 시니어합창단에서 취미로 노래를 하고 있다 호흡이 짧고 고음이 잘 안 나고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지고 내가 들어도 영 아니지만 노래가 너무 좋으니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달 10일 주일 밤에 뚱뚱해진 몸에 빨간 드레스 단복을 입고 생애 마지막 노래처럼 최선을 다 했다
프로그램에는 나의 자작시 낭송도 있다 교인들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일본의‘시바다 토요’여사의 시 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하였다
이어서 16일 토요일 저녁엔‘카페 로댐’에서 나의 시 낭송회 가 있었다.
작년에도 가을맞이 시 낭송회를 하며 내가 내년에 또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는데 다시 한 번 연극을 하듯이 생의 마지막 공연처럼 최선을 다 하였다
요즘은 낭송도 듣기보다는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로 생각한다
아틀란타에서 만난 귀한 연주자 김정자님 조수헌님 이향숙님이 찬조 출연해주어 지면으로나마 감사인사를 드린다
드디어 두 공연 모두 무사히 마쳤다
혓바늘이 돋아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까 해서 더 공들여 낭송을 하였다
나를 보기 위해 오신 많은 관객에게 감사하며 흡족한 공연이 되었기를 바란다 ...
긴장이 풀리어
허전힌 마음을 달래려 며칠 후 친구에게로 떠난다.
친구 J는 6.25사변이후 대전으로 피난 가서 서울 학생들만 다니던 '서울종합학교'에서 만난 중앙여고 학생이다 내게 친구가 많은 것은 그 시절 같이 공부한 타교 친구들이 많아서였다 J가 미국으로 이민 간 것만 알고 있었지만 어디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소식 끊기고 30여 년 만에 바람결에 내가 아틀란타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몇 달 전 아틀란타 문학회 웹사이트서 최총무에게 나를 찾아달라던 친구이다
이 친구 역시 시를 쓰며 사회복지를 전공해서 L A에서 시니어 사업에 관계 하고 있다 십대 소녀시절에 만난 친구이지만 80 넘어서 우리가 아직 살아있어 볼 수 있음을 감사하며 10월7일 오후 할머니 둘이 엘에이 공항에서 이름 부르며 얼싸 안을 것이다 아마도 서로 울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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