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대신 원망을 품고 살면서도 남편을 떠나지 못했던 ‘적과의 동침' 영화 속 주인공 처럼 코로나를 품고 산 지 삼년 째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발 우울이 지구촌을 덮쳐 웃을 일이 더 줄었다.
그럼에도 먹고 일하고 잠자야 하는 필연이 비극적인 연극 속 희극적인 대사처럼 안도감을 주는 요즈음이다.
살아 온 날들이 남은 날들 보다 길었던 이유로 죽음이 늘 가까이 있다.
60대가 되어 만나는 니체는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고 나를 흔든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은 크나 큰 위로이다. 그것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끔찍한 밤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이다”라는 말에 불확실성과 불합리 투성이의 2,30대를 시간의 무심함에 편승해 삶을 유지했으니, 그는 죽음을 미끼로 한 젊은이의 삶을 유지 시킨 공로자 이기도 하다.
'꽃이 피면 함께 웃고 꽃이 지면 함께 울던’친구를 잃었다.
친구는 암을 앓다가 우애 좋게 일년 먼저 떠난 형을 따라 갔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종류의 업소를 경영하는 이유로 비지니스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가족 여행을 함께 가던 사이이기도 했다.
다정하고 다감한 편인 친구는 안부를 먼저 묻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여행지 이름이 적힌 티셔츠 같은 선물을 사서 안기며 작은 감동과 부채감을 주던 사람이었다.
그 친구와 마지막은 함께 어울리던 세 부부 중 누군가의 생일 만찬에서 였다.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모두 외출을 조심하던 때 였지만 우리는 어떤 계시처럼 두개씩 마스크를 쓰고 모였다. 물론 그 친구는 체중은 줄었지만 아직 암판정을 받지 않은 때 였다.
싱겁고 실없는 소리들을 하며 밥을 먹고 해피버스데이를 부르며 케익크를 자르고 일어서는 데 친구는 우리 노래방 가자는 제안을 했다. 어쩌면 알 수 없는 예감에 더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친구 사후에 하기도 했다.
모두 주저하는 데 친구 부인이 나서서 '노래방은 코로나로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말로 남편의 제안을 잘랐다.
코로나 보다 지독하고 치명적인 암을 품고 있던 친구에게 노래한 곡 들려주지 못하고 그의 노래 한 곡 들어주지 못한 인색한 친구가 되었다.
며칠 전 동 업종 종사자 야유회에 친구 부인은 남편 대신 아들의 손을 잡고 참석했다.
부쩍 야위고 말 수가 적어진 모자를 바라 보자니 형언키 어려운 우수가 엄습했다.
마치 하릴없이 봄 볕 아래서 혼자 '봄 날은 간다'노래를 듣는 것처럼.
'낡은 잡지의 표지 처럼 통속한 삶'이란 싯귀절은 삶에 대한 정직한 정의여서 감동은 삭감하지만, 먼저 간 지인들의 죽음 앞에서는 전율에 떨게 하는 표현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그 곳에서 덜 아프고 안식 하기를 바라며, 가끔은 남아있는 우리들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시공을 넘나드는 안부를 보낸다.
앞 다퉈 피던 꽃들이 시들어 가도, 그가 없어 함께 울지 못하는 봄이 가고 속절 없이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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